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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전례의 숲: 주님, 교회가 바치는 제물을 굽어보소서(제물을 받아주시기를 비는 기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12-05 조회수5,630 추천수0

[전례의 숲] “주님, 교회가 바치는 제물을 굽어보소서.”(제물을 받아주시기를 비는 기도)

 

 

주님의 몸과 피를 봉헌하는 기도를 바치고 나서, 사제는 다시 하느님께 이 제물을 받아주시라는 기도를 바칩니다. 이 기도는 봉헌의 주제를 가지고 있으면서 뒤에 연결되는 “일치를 위한 성령 청원” 기도를 시작하는 독특한 특징을 지고 있습니다. 미사경본 총지침은 이 기도를 감사기도의 독립 요소로 열거하지는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교회가 바치는 제물, 곧 미사 제사를 언제나 기꺼이 받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바치시는 제물이고, 더군다나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물을 받아주시라고 청하는 기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 기도가 감사기도에 나중에 들어온 까닭입니다. 고대 감사기도문을 다듬어 만든 감사기도 2양식, 그리고 현대에 만든 화해 감사기도 1양식에는 이 기도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제물 봉헌 기도나 제물을 받아 주시기를 청하는 기도나 그 기능은 같습니다. 그것은 봉헌입니다. 다만 두 번째 기도는 같은 주제를 되풀이하면서 그 뜻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에게 선물을 드리면서 먼저 “당신께 드리는 선물이에요.” 말합니다. 이어서 흔히 “마음에 드실지 모르지만 정성껏 준비한 것이니 꼭 받아주십시오.” 하고 덧붙입니다. 자연스러운 마음의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첫 문장은 제물을 봉헌하는 기도에, 둘째 문장은 제물을 받아주시기를 청하는 기도에 비할 수 있습니다.

 

사실 교회는 하느님께서 자신이 바치는 제물을 받아주실 것을 확신지만 자신이 제물을 바치기에 부당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자신의 제물을 받아 주시기를 청하는 기도를 덧붙였습니다. 간결한 뼈대에 정감 있는 살을 붙인 셈입니다.

 

한편, 이 기도를 바치며 교회는 자신의 부당을 자각하면서 참되고 완전한 봉헌자이신 예수님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지를 헤아려 보게 됩니다. 그리고 제사를 바칠 자격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응답하려는 것임을 일깨웁니다.

 

 

우리의 삶과 제사가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기억하게 해

 

현행 감사기도들에서 위에서 말한 대로 2양식과 화해 1양식을 제외하고 모든 감사기도에서 이 기도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일치를 위한 성령 청원” 기도와 대부분 한 문장에 배치되어 그것을 시작하는 기능을 갖습니다. 이렇게 두 기도가 나란히 놓으면서 둘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합니다. 곧 신자들이 성령의 선물을 받아 하나가 되는 것은 하느님께서 제물을 받아주신 결과라는 뜻입니다.

 

각 감사기도는 이 기도를 통하여 제물의 뜻을 표현합니다. 3양식은 교회가 바치는 제물이 “성자께서 죽임을 당하시어 하느님과 우리를 화해시킨 제물”(우리말로는 “하느님 뜻에 맞는 제물”로 옮겼음)임을 밝힙니다. 4양식은 우리가 바치는 제물은 하느님께서 직접 마련하여 주신 것임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기원 감사기도에서는 “교회 안에 남겨주신 그리스도의 파스카 제사”라는 표현으로 제사의 파스카 성격과 함께 십자가 제사를 계속하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화해 2양식에서는 “성자와 함께 저희 자신도 받아 주시고”라고 기도하며 우리 자신도 예수님과 함께 하나의 제물이 된다는 내용을 밝힙니다.

 

다른 감사기도들과는 달리 1양식에 나오는 내용은 매우 풍요롭습니다. 이 부분은 다시 두 기도문으로 나뉩니다. 첫 기도는 “이 제물을 인자롭고 온화하신 얼굴로 굽어보시고”로 시작합니다(우리말로는 “이 제물을 인자로이 굽어보시고” 옮겼음). “인자롭고 온화하신 얼굴” 표현에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제사를 바칠 자격이 없지만 오직 하느님의 자비에 의탁하여 봉헌한다는 속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과 지금 행하고 있는 제사가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기억시켜 주는 기능이 있습니다(V. 라파).

 

이어서 잘 알려진 구약의 세 개의 제사를 말합니다. 아벨, 아브라함, 멜키체덱의 제사입니다. 이 제사들은 모두 하느님께서 기꺼이 받아주신 제사들로서 전통적으로 예수님과 교회의 제사를 미리 알리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옛 제사들을 미사와 연결시키며 하느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리라는 확신을 표현하고 미사가 제사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사를 받아주시기를 한 번 더 청하는 기도

 

아벨은 하느님께 맏배들과 그 굳기름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 제사는 하느님께 기꺼이 받아들이십니다(창세 4, 4). 그가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카인에게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박해 받는 의인의 표상이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아벨의 제사는 예수님의 제사를 준비한 첫 단계로 이해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만물의 맏이로서(로마 8, 29, 골로 1, 15. 18)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습니다(히브 9, 26).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제물로 바치려고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묶어 제단 장작 위에 올려놓았습니다.”(창세 22, 9). 천사의 개입으로 아들 대신 숫양을 제물로 바쳤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실제 제물로 여기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 보인 끝없는 순종과 신뢰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갈라 3, 7) 그 믿음은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는 조건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새 이사악”인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님도 죽기까지 순종하시며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습니다(로마 8 32).

 

멜키체덱은 살렘(예루살렘의 옛 이름) 임금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로서 빵과 포도주를 바쳤습니다 (창세 14, 18; 히브 7, 1). 실제로는 하느님께 바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바쳤습니다. 그러나 그가 사제이기 때문에, 특히 히브리서의 영감을 받아, 전통적으로 그의 봉헌을 제사로 여겼습니다. 예수님은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대 사제”로서(히브 6, 20)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기도에서는 멜키체덱의 제물을 “거룩한 제사, 흠 없는 제물”이라고 말하는데 그가 바친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친 제물과 같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두 제사보다 멜키체덱의 제사가 미사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넌지시 말한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미사의 제사 사상이 발전된 흔적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한편, 바로 앞에 나온 “기념” 부분과 상응하여 아벨은 예수님의 죽음을, 아브라함은 부활을, 그리고 멜키체덱은 승천을 표상한다고 이해하는 이도 있습니다(M. 리게티).

 

둘째 부분에서는 “전능하신 하느님, 거룩한 천사의 손으로 이 제물이 존엄한 천상 제대, 엄위로운 주님 면전에 오르게 하소서.”하고 기도합니다. 우리말 미사경본에서는 “엄위로운 주님 면전에”(in conspectu divinae maiestatis tuae) 부분을 생략하고 옮긴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묵시록에 나오는 천상 전례의 영감을 받았습니다(8, 3-4). 거기에는 천사는 손에 향 연기와 신자들의 기도를 섞어 하느님 앞으로 가져갑니다. 제사를 받아주시기를 한 번 더 청하는 단순한 기도인데 정감적이고 시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12월호, 심규재 실베스텔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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