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한 알] 성전에서 지켜야 할 예절 Q1 성전에 들어갈 때 성수를 찍어야 하나요? 문을 열고 성전에 들어서면 성수가 담긴 성수대가 눈에 들어옵니다. 성수대 옆에는 다음과 같은 기도문이 적혀 있습니다. “주님! 이 성수로 세례의 은총을 새롭게 하시고, 모든 악에서 보호하시어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게 하소서.” 이 기도문을 찬찬히 읽어보면 성수를 찍는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성전에 들어서기 전에 바깥세상에서 더럽혀진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는 뜻이지요. 기도문을 마음으로 외면서 성호경을 긋는 행동은 정결한 몸과 마음으로 미사에 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성수는 물에 소금을 넣고 사제가 축성한 깨끗한 물로 더러움을 씻어내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세례성사 때 물로 이마를 씻으면서 지난날의 잘못을 끊어버리는 의식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수를 이마에 바름으로써 세례성사의 마음을 되새기고 첫 마음으로 돌아가겠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동안 이런 의미를 모르고 무심코 성수를 찍어 발라왔다면, 이제부터라도 그 의미를 잘 알고 성수를 대한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요? Q2 성수를 가져와 마시거나 집안에 뿌리는 경우가 있던데요? 교회는 세례성사 때, 부활 전야 때, 또 사목적 필요에 따라 성수를 뿌리는 예식을 거행합니다. 이는 악을 쫓고 세례성사 때의 마음을 되새기자는 의미를 담고 있지요. 그러다 보니 성당에 비치 된 성수통에서 성수를 떠와 수시로 마시거나 집안 곳곳에 뿌리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아픈 부위에 바르는 경우도 있고 식구들이 건강하라며 아예 밥 짓는 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요. 특히 기적이 일어난 성지에서 가져온 성수를 눈에 넣거나 마시고 “기적의 성수”라며 주변에 선물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미신에 가까운 행동입니다. 오랫동안 항아리에 담긴 물은 오염되기 쉽습니다. 그런 물을 마시고 바르고 눈에 넣고 밥을 짓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성수의 의미를 되새기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족해야 하지 않을까요? 다만 악, 어둠을 쫓기 위해 성수를 뿌리는 것은 성수가 갖는 원래의 의미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괜찮습니다. Q3 감실 앞을 지날 때는 항상 인사해야 하나요? 성당에 따라 조금씩 그 위치가 다르지만 보통 제대 뒷면이나 측면에 감실이 있습니다. 감실은 예수님의 거룩한 몸인 성체를 모셔두는 작은 공간으로 성당에서 중요한 곳이지요. 감실은 예수님께서 계신 곳이기 때문에 그 앞을 지날 때는 반드시 무릎을 꿇거나 허리를 굽혀 경의를 표해야 합니다. 성체가 모셔 있는 감실은 아주 작은 빨간 등이 켜져 있습니다. 미사 중에 불이 훤히 켜져 있을 때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평상시 성당 안이 조금 어두울 때 보면 잘 보입니다. 그러니 미사 때든 평상시든 예수님이 그곳에 계심을 아는 우리는 감실 앞을 지날 때 예의를 갖춰 고개를 숙여야 마땅하겠지요. Q4 미사보는 의무인가요 선택인가요? 미사보에 대한 근거는 코린토 1서 11장에 나옵니다. “어떠한 여자든지 머리를 가리지 않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면 자기의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1코린 11,5). 이어서 이런 말이 나옵니다. “머리를 가리지 않으려면 아예 머리를 밀어 버리십시오. 머리를 밀거나 깎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운 일이라면 머리를 가리십시오”(1코린 11,6). 하지만 요즘 세상에 미사보를 안 쓰려면 머리를 밀어 버리라고 한다면 누가 받아들이겠습니까? 보편교회인 가톨릭교회는 전 세계가 같은 말씀과 전례양식에 따라 미사를 드리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미사보를 쓰는 전통은 많이 변화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미사보를 꼭 써야 하는지 의문을 갖는 신자분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여성에게 미사보를 쓰라는 것을 성차별이라고 반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받아들이기 보다는 초기 교회로부터 내려온 오랜 전통이라고 봐야 마땅합니다. 다만 미사보, 즉 하얀 보는 영세 때 다짐했던 영적인 깨끗함을 잘 지켜나간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만큼 이를 잘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참고 문헌 「그건 이렇습니다」, 김영배 신부, 성바오로 「여기에 물이 있다」, 차동엽 신부, 가톨릭문화연구소 「유캣 YOUCAT」, 크리스토프 쇤보른, 오스트리아 주교회의, 가톨릭출판사 [나눔의 소공동체, 2017년 2월호, 최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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