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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그리스도교의 입문 성사: 세례, 견진, 성체성사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5-14 조회수9,102 추천수0

[능동적인 미사 참여와 전례 활성화를 위한 나눔] 그리스도교의 입문 성사 I

 

 

“사람들은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들을 통하여 어둠의 권세에서 해방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묻히고 함께 부활하여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는 성령을 받아, 주님의 죽음과 부활의 기념제를 하느님의 백성과 함께 거행한다”(어른 입교 예식 1항).

 

모든 사람은 입문 성사들을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인이 되고 교회의 일원이 되어 신앙인의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입문 성사는 세 가지 성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세례성사는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어 하느님의 자녀가 되도록 이끌어줍니다. 견진성사는 성령 특은의 날인을 받아 그리스도인이 더욱 완벽하게 주님을 닮아 그리스도의 몸을 완성하도록 도움을 줍니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여 하느님 백성의 일치를 이루어 줍니다.

 

따라서 세 가지 입문 성사는 서로 다른 모습과 형식을 지니고 있지만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입문 성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이 세 가지 입교성사들은 서로 결합되어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완전히 성장시키고, 교회와 세상에서 그리스도교 백성으로서 사명을 다하도록 해 줍니다”(어른 입교 예식 2항).

 

 

세례성사(Baptismus)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고 세례성사를 제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임무를 사도들과 교회에 맡기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님의 명에 따라 끊임없이 세례성사를 거행하며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리스어로 “세례(baptisma)”는 물에 잠기는 행위를 뜻합니다. 물에 잠기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며, 그 물에서 일어서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을 건너 부활의 삶에 동참하게 해줍니다. 또한, 세례는 다른 성사들의 문입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만이 견진성사를 받을 수 있고, 성체성사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일 세례를 받지 않았다면 견진성사와 성체성사를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다시 태어났으며, 동시에 새로운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 안에 뿌려진 하느님의 생명을 키우는 것입니다. 특히 “말씀과 성사”의 삶은 하느님의 생명력을 싹틔우고 자라게 하는 필수적인 영양분입니다. 세례를 통해 우리 안에 심어진 생명의 씨앗을 전례 안에서 자라나게 할 때, 우리는 주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행복을 찾게 될 것입니다. [2017년 5월 14일 부활 제5주일 수원주보 3면, 김일권 요한사도 신부(갈곶동 본당 주임)]

 

 

[능동적인 미사 참여와 전례 활성화를 위한 나눔] 그리스도교의 입문 성사 II

 

 

“우리를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세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인장을 찍으시고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습니다”(2코린 1,21-22).

 

로마 가톨릭 교회의 입문성사(세례, 견진, 성체)들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교회와 세상 안에서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그 임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고, 하느님의 영광을 거행하고 찬양하며, 교회와 세상에 봉사하는 것입니다. 이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도록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더욱 성숙시키고 강화하는데 탁월한 성사가 바로 “견진성사(堅振聖事, Confirmation)”입니다.

 

 

견진성사(堅振聖事 Confirmation)란?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견진성사는 세례성사와 마찬가지로 단 한 번 받을 수 있는 성사입니다. 또한, 견진 받는 신자의 이마에 축성성유를 도유함으로써 그리스도인에게 지워지지 않는 인호를 새겨주며, 머리 위에 두 손을 얹어 안수행위를 함으로써 성령의 은총이 전해지도록 기도합니다. 성령의 은총은 우리가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와 더 친밀해지도록 도움을 주기에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성숙시켜줄 뿐만 아니라 더욱 강화시켜 줍니다. 그 은총은 개별적이고 인간적인 우리의 나약함을 보완해 줍니다. 특히 세례 때 받은 하느님의 사랑이 그리스도인에게는 큰 선물이며, 동시에 함께 나누어야 할 은총임을 깨닫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그 깨달은 바를 교회와 세상 안에서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줍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확신하게 되고,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하고 외치는 것입니다”(로마 8,15).

 

 

성령의 선물

 

견진성사 예식에서 “안수”와 “성유도유”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주요 내용입니다. 성경에 사도들이 성령을 전해주기 위해 안수를 주는 기록들이 많습니다(사도 8,17; 19,6). 손을 얹어 안수를 주는 행위는 성령을 전달하는 행위입니다. 이 행위를 통해 견진자는 성령을 받게 되고, 성령의 선물을 얻게 됩니다. 교회는 이것을 “성령칠은(聖靈七恩: 슬기, 통달, 의견, 지식, 용기, 효경, 경외)이라고 합니다. 성령의 은총은 개개인에게 필요한 은총으로 개인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고 채워줍니다. 예를 들어, 오순절에 겁에 질린 제자들이 성령을 통해 변화됩니다.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이 용기와 열정으로 가득하여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모습으로 바뀐 것입니다.

 

 

견진성사 후 우리의 삶은 변화되었는가?

 

성령의 은총으로 그리스도인은 더 완벽해지고, 더 성숙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 우리는 성령의 은총을 실감하지 못하고, 삶의 변화를 느끼지 못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성사거행”을 통해 마법과 같은 즉각적인 변화를 원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성사”는 헤리포터의 ‘마법’도 아니고, 반지의 제왕의 ‘절대반지’도 아닙니다. 견진성사로 인한 변화는 마법처럼 즉시 나타나거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견진성사는 우리가 하느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깨닫게 해줍니다. “주인과 종”이 아닌 “아버지와 자녀”임을 알게 해줍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관계 안에 머무를 때, 성령의 은총으로 인한 변화가 영적인 차원에서, 신앙적인 차원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음을 깨닫고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도록 알려줍니다”(갈라 4,6 참조). [2017년 5월 21일 부활 제6주일 수원주보 3면, 김일권 요한사도 신부(갈곶동 본당 주임)]

 

 

[능동적인 미사 참여와 전례 활성화를 위한 나눔] 그리스도교의 입문 성사 III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1코린 11,24-26).”

“그리스도교 입문성사”의 마지막은 성체성사(聖體聖事, Sacramentum Eucharistiae)입니다. 라틴어의 “Eucharisiae”는 그리스어 “Eucharistein”을 어원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감사, 찬양”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에 대한 감사일까요? 바로 하느님 아버지입니다.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의 사랑을 세상에 보여주신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감사입니다.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또한, 교회는 “감사와 찬양”인 성체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생명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러기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체성사를 가리켜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인 성찬의 희생제사”라고 말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성체성사에 관하여 말하듯,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命; 기억하고 행하여라)을 충실히 따르며 매일 또는 매주일마다 거룩한 성찬례를 거행합니다.


무엇을 기억하고 행하는가?

하느님의 백성은 전례 안에서, 특별히 미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최후의 만찬과 죽음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기념하는데, 이는 단순한 추억의 반복이 아닌 지금 여기서 “파스카의 신비”가 현재화되는 것입니다. 성찬 전례 안에서, 과거의 생명력 없던 기억은 지금 살아있는 기억이 됩니다. 이는 성찬례를 제정하시면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 그리고 미사의 모든 감사기도문 안에서 완성됩니다. “저희는 지금 구원의 기념제를 거행하오니 그리스도의 죽음과 저승에 가심을 기억하며…”(감사기도 제4양식).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명을 따른다는 것은 단순히 성찬 전례에 참여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마태 9,13).”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처럼 자비로워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을 따름으로써 그를 닮아가는 것이 진정 그를 기억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

사실 열심한 그리스도인도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설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요한 6,63).”라는 말씀은 우리가 성체성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집전자는 성찬 전례에서 축성기도문을 외웁니다. “성령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 성령으로 인하여 빵과 포도주 안에서 거룩한 변화가 일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됩니다. 형상은 빵과 포도주이지만 질료는 성체와 성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두 형상 안에 실제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현존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생명으로 빵을 만들어 제자들에게 주었습니다. 지금은 교회 안에서 성령의 힘으로 우리에게 그 빵을 주십니다. 그 빵은 우리를 살찌우는 영적 양식입니다. 우리가 그 빵을 먹음으로써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요한 6,57)”. [2017년 5월 28일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청소년 주일) 수원주보 3면, 김일권 요한사도 신부(갈곶동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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