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톡톡] TV 미사 참례, 수많은 의문과 몇 가지 제안 TV 미사를 시청할 때마다 의구심이 들어요. 미사가 유명 인사들과 성당을 보여주는 구경거리로 전락되는 걸 보면 걱정스러워요. 더구나 세속화된 세상에서 이런 종류의 방송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복음화나 신앙 체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 체세나에서 빈첸초 - 이 편지는 특별히 주목할만 하군요. 불평도 있지만 조언도 있고, 비판적인 관찰도 하지만 구체적인 제안도 내놓고 있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주일마다 마주하는, 대단히 현실적인 소재를 건드리고 있군요. 매스컴, 학회, 전문 학술지에서 이에 관한 토론을 예전부터 활발하게 진행해 오고 있죠. 해당일의 방송 주제는 주교회의 전례위원회의 전국 사목 자문단 모임에서 날짜 순으로 정해놓은 거예요. TV로 미사를 방영할 때 전반적인 비판이나 단서를 붙일 수 있었을 거예요. 이견들이 없지 않다는 말이지요. 소심해서 작게 말한다 해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뜻이에요. 주교회의의 심의 이탈리아 주교회의가 주일 프로그램을 놓고 열심히 분석하고 토론을 벌였어요. 여기서 장점도 얻고 효과도 봤지요. 하지만 약점, 결점, 불만도 과도하게 표출됐어요. 이는 장소 선택, 초대 손님들이나 행사 주관자들(소위 ‘구경거리’) 섭외, 참여 단체, 성가대, 성가 선택에서 생기는 문제인데, 늘 같은 식으로 제작하지요. 하나도 빠짐없이 분석하고 ‘수정’안을 내기까지 과정은 신속해요. 누가 봐도 중차대한 문제임이 분명하기 때문이죠. 이탈리아 교회가 여기에 호흡을 잘 맞추니, 단 하루, 단 한 시간 동안에 수백만 시청자를 그리스도교 신앙의 최고 행사에 한데 모을 수 있는 거죠. 여러 다양한 제안들이 있었어요. 모든 제안이 다 신속히 간단하게 실행에 옮겨진 건 아니지만, 그중에서 일반적인 동의를 얻은 제안이 두 가지 있어요. 하나는 프로그램 ‘골격’을 수정해서 방향은 더욱 현대에 맞고 내용은 더욱 효과적이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교회의의 위원회와 교구 기관의 지도 아래 최상의 공동 작업과 공동 책임이 실현되도록 방향을 잡는 거예요. 하지만 외관만 좋다고 다는 아니죠. 독자께서 던진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못한다면 말이죠. 텔레비전 방송 미사의 의미는 무엇인가? 목적은 무엇인가? 누가 시청하는가? 방송 책임자들은 아마도 주일미사 참석이 불가능한 환자와 어르신들이 볼 것으로 생각하겠지요. 방송 시간을 고려해 볼 때 최고라고 할 수 있겠어요. 아마도 그분들에게 의무를 채울 수 있는 기회를 드린다는 마음속 확신에서 그렇게 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현재는 방송을 보는 시청자 수가 어느 지역을 불문하고 엄청나게 늘었지요. 다른 한편, 의무라는 개념이 더이상 의미가 없어요. 과거 개념에는 미사에 ‘참석해서 말씀을 듣는다’는 명목이 있었다면, 미사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 반성과 예식서 개정이 이루어진 지금은 능동적인 참여를 바라기 때문이죠. 인간적, 영적 유익 미사는 회중 전체가 공동체로서 한 몸을 이루는 행위인데 말없이 시청만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미사의 객관적 실재가 하나의 영상물과 똑같을 순 없지요. 중대한 이유로 거동이 불가능한 사람이라면 이런 대치물, 즉 어딘가에서 거행된 예식을 방송을 통해 보는 것 때문에 걱정할 이유는 없어요. 믿음의 정신으로 시청하는데 인간적, 영적 유익이 없을 순 없겠죠. TV 방송 미사는 의도했든 아니든 개방적이에요. 건강한 이든 병자든, 가톨릭 신자든 아니든, 신앙인이든 아니든, 누구나에게 열려 있어요. 예상 참석자들에 대한 아무런 소개도 없이 미사를 여러 다양한 장소와 환경에서 거행한다는 사실 자체야말로 어떠한 종류이든 차별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거죠. 가톨릭의 대표적인 신앙 행위인 미사를 방송으로 내보낼 때는, 당연히 시청자들이 예식 순서를 이해할 수준은 되고 나아가 예식의 흐름에도 믿음으로 참여할 수 있을 거라고 전제하는 거지요. 바로 이것이 약점이자, 심각하게 반성해 마땅할 진짜 문제죠. 귀하디 귀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보물을 허공에 날려버리지 않으려면, 또한 그리스도교적 가치들을 잘 모르고 이해도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할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반성해야죠.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서 성체성사를 거행하는 것과 TV로 미사를 시청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입니다. 우리가 미사에 오는 것은 예수의 분명한 명령을 따르는 거고, 미사에서 복음 선포와 믿음의 고백이 이루어지는 거지요. 새로운 복음화 수십 년 동안 열쇳말이 ‘복음화’라면 최근에는 여기에 ‘새로운 복음화’가 추가됐어요. 미사를 마치고 나가서 복음 선포를 하는 게 아니에요. 미사가 바로 복음 선포의 정점인 거죠. 사도들이 전해준 예수의 말씀, 곧 살아계신 말씀으로부터 복음 선포가 시작되는 거예요. 오직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만물에게 구원을 베푸신다, 이렇게 말이죠. 복음화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요? 이보다 더 바람직한 일, 더 현명하고 시급한 일은 아무것도 없지요. 가능성은 무수히 많아요. 복음을, 아니 성경을 전체적으로 ‘주석하고’ ‘기도하며’ 읽는 일에서부터, 많은 나라에서 이미 하고 있는 것처럼 사제가 없는 공소 신자들을 위한 말씀의 전례도 할 수 있고, 여러 가지 형태의 공동 기도를(성무일도 같은 전례 기도에서부터 개인 신심기도들까지) 한다든가, 신앙과 윤리를 주제로 한 대화나 신앙 체험 나누기도 괜찮고, 나아가 타 교파, 타종교 대표들과의 만남도 생각해볼 수 있겠군요. TV는 우리 시대의 복음 선포를 위해 활짝 열린, 대단히 유용한 학교에요. 다 없애고 미사만 남긴다면 하느님에 굶주리고 그리스도를 배고파하는 이들에게 가장 알맞은 음식을 그들로부터 뺏어버리는 거죠. 그렇다고 미사를 없애는 것은 물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요. (R. Falsini, La liturgia. Risposta alle domande piu provocatorie, San Paolo, Cinisello Balsamo 1998, 42-45)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7년 여름호(Vol. 38), 번역 최종근 빠코미오 원장수사(성 베네딕도회 요셉 수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