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회개와 지혜, 그리고 우정" - 3.16,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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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1-03-16 | 조회수484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3.16 사순 제1주간 수요일 요나3,1-10 루카11,29-32
"회개와 지혜, 그리고 우정"
미국에 있을 때 수도원 도서실에서 읽은 책 ‘켈트성인들의 지혜’라는 앞 장에 써져 있던 아름답고 진실한 고백의 짧은 편지 글이 생각납니다. 아마 선물 받은 책을 도서실에 내놓은 것 같았습니다. 영어 내용이 좋아 가로 안에 원문을 옮겨 적었습니다.
“친애하는 수사님, 저는 수사님이 이 책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수사님은 언제나 저의 친한 친구이자 동반자였고, 저의 매일 삶에 영감이었습니다. (Dear brother. I do hope that you will enjoy this book. You have always been a dear friend and companion, and an inspiration to my daily life)”
이런 친구관계, 부부관계라면 참 이상적일 것입니다. 언뜻 부러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날의 삶에 영감(an inspiration to my daily life)’ 이었다는 구절이 인상적입니다. 영감(靈感)의 빛은 바로 지혜의 빛입니다. 영감을 주는, 하여 함께 있을 때 내가 업그레이드되는 느낌을 주는 친구나 배우자가 최고의 벗입니다. 더불어 다음 페이지에 글귀도 좋았습니다.
“대대로 지혜는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이 되게 한다.”(지혜7,27) 라는 구절과 시토회의 수도승 앨레드의 “우정은 지혜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우정은 지혜이기에 지혜로운 사람만이 진정한 우정의 친구를 지닐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여 부부관계도 연륜과 더불어 지혜가 성장하면서 연정이나 애정에서 서서히 우정의 친구관계로 변화되는 것을 주변에서 종종 목격하게 됩니다. 반면 우정의 친구관계로 승화되지 못할 때 부부관계는 심한 어려움을 겪게 됨을 또한 무수히 목격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지혜의 원천입니다.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아는 것이 지혜이자 겸손입니다. 하여 하느님께 돌아가는 회개가 지혜와 깊은 관계에 있음을 단박 깨닫게 됩니다. 끊임없이 회개하는 이들이 바로 지혜로운 이들입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회개의 표징이 된 것처럼 예수님 역시 당대 사람들이나 오늘의 우리에게 회개의 표징이 됩니다. 오늘 1독서에서 요나의 선포를 듣고 회개한 니네베 사람들처럼 회개의 표징인 주님께 응답하여 즉시 주님께 돌아오라는 말씀입니다. 이래서 매일의 미사입니다.
눈만 열리면 회개의 표징들로 가득한 세상임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거행하는 미사와 성무일도 등 모든 성사와 공동전례 역시 주님의 회개의 표징입니다. 사대강 사업이나 구제역, 일본의 대지진으로 인한 참사들 모두가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는 주님의 회개의 표징들입니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늘 우리와 함께 계신 솔로몬보다 더 큰, 하느님의 지혜이신 주님이시오, 요나보다 더 큰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시는 회개의 표징이신 주님이십니다. 끊임없이 회개할 때 지혜로운 삶이요 주님과의 우정입니다. 주님뿐 아니라 좋은 우정의 친구도 생깁니다. 새삼 회개와 지혜와 우정이 깊이 하나로 연결되어있음을 봅니다.
솔로몬보다 더 크시고 요나보다 더 큰 분이신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회개한 우리 모두에게 당신 지혜를 선사하시어 당신과 우정의 친구가 되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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