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례식을 앞둔 시점이 되면 세례명 짓기에 여념이 없다. 성인사전을 찾아보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검색하고, 심지어 사제관이 무슨 작명소도 아니고 어찌나 세례명을 정해 달라는 전화가 많이 오는지 ‘그냥 확 작명소를 차려 ?’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형제님한테는 ‘요셉으로 하세요.’ 자매님한테는 ‘마리아가 좋잖아요.’ 하면서 정해 줄라치면 너무 흔하다는 둥 좀 성의 있는 답변을 부탁한다면서 이건 어때요, 저건 어때요, 이런다.
마태오복음 1장, 예수님의 족보에는 참으로 많은 이름이 등장한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름의 조합 속에 최종적으로 요셉이 들어 있고, 예수님께서는 그를 통해 이 세상에 오실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까지 어려운 이름들만큼 많은 고난이 따랐을 테고, 이름의 수만큼 많은 일꾼들의 협력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아브라함의 믿음에서부터 시작된 불씨는 세상 모진 풍파에도 꺼지지 않고, 결국 요셉의 의로움으로 완결되어 우리 안에서 환하게 타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믿음이나 의로움보다 더 커다란 보화가 숨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만일 아브라함이 믿음만 간직한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 그리고 요셉이 의롭기만 했더라면 어땠을까 ? 과연 이사악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이뤄질 수 있었을까 ?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통해 이 세상에 오실 수 있었을까 ?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믿기에 앞서 그분을 사랑했고, 요셉은 의로움을 실천하기에 앞서 하느님과 마리아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바칠 수 있었고, 요셉은 처녀의 몸으로 잉태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믿음과 의로움은 덤으로 받게 될 것이다. 사랑하면 우리도 믿게 되고 의로운 자가 되어 하느님을 맞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전국에 계신 요셉 신부님들, 형제님들 ! 영명 축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노성호 신부(수원교구 효명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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