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요하와
함께 보는
믿음살이 풍경 <37>
사순절 ‘십자가의 길’ 기도 때마다
사순절 동안 전 세계의 모든 가톨릭 신자들은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칩니다. 그리고 모든 본당들은 매주 금요일 공식적으로 ‘십자가의 길’ 예절을 행합니다. 이 예절에 참여할 때마다 생각나는 게 하나 있습니다.
오래 전 어느 지면에 ‘십자가의 길’ 기도에 관한 글을 한번 쓴 적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십자가의 길’ 기도를 ‘성로신공(聖路神功)’, 또는 ‘성로선공(聖路善功)’이라고 불렀지요. 그 얘기를 하면서 나는 성로신공의 ‘神功’을 ‘身功’으로 잘못 적었습니다. 육필로 쓴 원고를 우편으로 보내놓고 나서 확인을 해보니 ‘聖路身功’이 아닌 ‘聖路神功’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크게 당황하면서 급히 편집자에게 전화를 걸어 인쇄로 넘어가기 직전에 잘못된 원고 표기를 바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나는 내가 왜 ‘聖路神功’을 ‘聖路身功’으로 잘못 알고 있었는지 되우 궁금하였습니다. 내가 오랜 세월 아무 의심 없이 ‘神功’을 ‘身功’으로 기억하며 철석같이 믿어왔다는 사실이 재미있기도 하면서, 그렇게 알아왔던 이유 같은 건 없을까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니 자연 태안본당의 공소 시절, 내 어렸을 적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사순절에는 공소에서도 금요일과 주일마다 모든 신자가 함께 ‘성로신공’을 바쳤습니다. 공소의 경당은 의자도 없고 그냥 마룻바닥이었습니다. 미사를 지내건 공소예절을 하건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는 것은 기본이었습니다. 마룻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편히 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미사나 공소예절은 그런대로 견딜 만했습니다. 하지만 ‘성로신공’을 할 때는 죽을 맛이었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두 무릎을 꿇었다가 일어서고, 잠시 한쪽 무릎을 꿇었다가 일어서고, 다시 오래 두 무릎을 꿇고 있어야 하는 그 ‘고행’이 한없이 반복되는 것이었습니다.
내 두 무릎의 거죽은 다른 사람들보다 다소 두꺼운 편입니다. 굳은살이 잡혔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1964년 본당 승격 후 10년 만인 1974년 새 성전이 지어지고(지금의 성전은 2004년에 착공한 '40주년 기념성당'임) 의자들이 놓인 이후로는 ‘십자가의 길’ 기도도 별로 힘들지 않게 되었는데, 나는 공소 시절 경당의 마룻바닥에서 성로신공을 바치던 때의 그 ‘고달픔’에 대한 기억이 워낙 명료해서 ‘身功’이라는 인식이 내 머리에 쉽사리 자리 잡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도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할 때는 그렇게 옛날 생각이 나곤 합니다.
지요하(소설가·태안성당)
*천주교 대전교구 <대전주보> 2011년 3월 20일(사순 제2주일) 제2075호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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