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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11-03-24 조회수587 추천수8 반대(0) 신고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루가 16,19-31)

 -유 광수신부-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색 옷과 고운 이마로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개들만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오늘 복음에서 부자와 가난한 라자로는 누구인가?
우리는 일반적으로 부자가 되기를 원한다. 왜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가? 부자가 되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먹고 싶은 것 먹고, 가고 싶은 곳 가고, 갖고 싶은 것 갖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돈 가지고 안 되는 것이 거의 없다. 한 마디로 부자가 되면 얼마든지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 수 있다." 그러니 부자 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그래서 누구나 부자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재물이 곧 하느님이요, 재물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한다.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부자란 어떤 사람이고 가난한 라자로는 누구인가? 복음에서 말하는 부자란 이기적인 인간을 말하고 가난한 라자로는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신 예수님을 말한다. 우선 이기적인 인간인 부자에 대해 묵상하자. 부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있다. "어떤 부유한 사람의 땅이 많은 소출을 내었다.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지?'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루가 12,16-21)

 

복음에서 부자란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남과 나누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하는 이기적인 인간을 말한다. 즉 부자란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은 부자들이다. 생명, 시간, 건강, 능력, 이웃, 아름다운 자연, 사랑하는 가족, 사랑하는 연인,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많은 사람들, 나를 사랑해주는 많은 친구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 저녁에 하늘에 총총히 떠 있는 별들, 온갖 다양한 아름다운 꽃들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는 부자들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누구를 위해서 어떻게 사용하는가? 부자란 이 모든 것을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하는 사람이다. 즉 하느님이 주신 선물을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사는 사람이다." 부자란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했다. 즉 부자란 하루 24시간을 몽땅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하고 하느님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하루 24시간을 자신이 먹고 마시는 일에, 친구를 만나는 일에, 자기 취미생활에, 일을 하는 데에, 여기저기 구경하는 일로 바쁘게 생활하면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데에, 이웃에게 봉사하는 일에,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는 일에는 시간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다. 부자란 다른 사람이 아니다 그 많은 시간을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사는 사람이요, 자기 자신만을 위해 시간을 사용하는 사람이다. 즉 자기 이외에 다른 사람에게 또는 하느님에게는 인색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가난한 라자로는 누구인가? 
가난한 라자로는 예수님을 상징한다. 가난한 라자로인 예수님은 부자인 인간의 문 앞에 버려져 있는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가장 가난한 이의 모습으로 자신만을 위해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고 있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가난한 모습으로 와 계신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날마다 호화롭게 살고 있는 인간의 이기적인 눈을 가난한 이에게 돌리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 가장 가난한 이의 모습으로 부자의 대문 앞에 버려져 있으시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이방인이었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다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25, 35-40)

 

왜 예수님은 가난한 라자로가 되셨는가? 예수님이 처음부터 가난하셨던 분이 아니시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같은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필립 2,6-7)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으셨기 때문에 가난한 분이 되셨던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난한 삶에 대해 바오로는 "그분은 부요하셨지만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분이 가난해지심으로써 여러분은 오히려 부요하게 되었습니다."(고린 후 8,9)라고 설명해 주셨다.

결국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단순히 얼마나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하는 사람은 부자요, 이웃에게 나눔의 삶을 사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다. 부자는 항상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기 때문에 늘 부자로 살 것이고, 가난한 이는 가진 것을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은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비록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늘 남을 위해서 봉사하고  가진 것을 나누며 생활하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요, 정말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늘 자기만을 위해서 살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인색한 삶을 산다면 그 사람은 비록 가진 것이 없다 하더라도 어리석은 부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물 한 잔도 청하지 않으셨고 머리 둘 곳 조차 없는 떠돌이 생활을 하셨다. 아니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피 한 방울까지도 인간을 위해서 다 흘리셨다.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철저하게 가난하게 태어나셨고 이 지상의 생활하시는 동안에도 가난한 삶을 살으셨고 죽으실 때에도 몸에 걸쳤던 옷까지도 다 벗기우신 채 가난한 죽음을 맞으셨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모르옵니다."라고 끝까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위해서 기도하셨고 십자가에서 죽어가시는 그 순간에도 당신의 죽음을 걱정하신 것이 아니라 함께 죽어 가는 왼쪽에 있는 강도에게 "너는 오늘 나와 함께 하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라고 강도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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