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자렛의 고요
그때에 26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 하고 말하자, 35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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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 탄생 예고는 고요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강생의 신비는 고요의 신비이기도 합니다. 구약성경의 다니엘 환시에, 신약성경에서는 주님의 탄생 예고에 등장하는 가브리엘 천사는 소리 나지 않는 ‘고요의 신’ 을 신고 다니는 천사로 묘사됩니다.
주님 탄생 예고가 전해진 갈릴래아 지방은 힘 있는 자들한테는 별 관심이 없는 한적한 변방입니다. 산동네 나자렛 또한 신통한 인물이 나올 수 없는 외진 마을이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죄 명패에도 예수님을 ‘촌놈’ 으로 얕잡아 ‘나자렛 사람 예수’ 라고 적었습니다. 그러니 그분의 부모 나자렛 마리아나 요셉은 얼마나 더 이름 없는 시골 사람들이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실 때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모와 형제를 들추며 예수님을 깎아내립니다. 모두 가난하고 이름 없고 내세울 것 없이 조용한 집안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전후를 감싸고 있는 고요는 창세기 시작에 나오는 침묵과 고요를 느끼게 합니다.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기 전에 우주는 꼴을 갖추지 못한 채 고요와 어두움으로 텅 빈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거룩함의 시작은 천지창조와 예수님 탄생의 신비에서처럼 할 말이 있어도 말하지 않는 묵언이 아니라 할 말이 없는 침묵과 고요에서, 사람이나 세상에 대한 그리움인 외로움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그리움인 고독에서 출발합니다.
윤인규 신부(대전교구 버드내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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