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나자렛 - 송영진 모세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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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1-03-28 | 조회수510 | 추천수10 | 반대(0) 신고 | |
<사순 제3주간 월요일>(2011. 3. 28. 월)(루카 4,24ㄴ-30)
<나자렛>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이런 구절만 보면, 예수님께서 무기력하게 고향에서 쫓겨났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겉으로만 보면 나자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쫓아낸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예수님께서 고향을 버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쫓겨난 것이 아니라 나자렛 사람들이 버림을 받았습니다. 물론 원인은 나자렛 사람들 자신에게 있습니다. 믿음도 없이 기적만 바라고, 회개할 줄 모르고, 형식적인 신앙생활만 하는 바리사이들과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버림받는 처지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게 어디 나자렛 사람들만의 일이겠습니까?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비롯해서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자들 모두 자기들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배척함으로써 결국 그들 자신이 하느님의 버림을 받았습니다. 지금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흔히 예수님께서 인간들에게 거부 ‘당하고’, 배반을 ‘당하고’, 수난을 ‘당하고’, 죽음을 ‘당한’ 것으로 표현하지만, 성서학이나 신학에서는 예수님께서 적극적으로 당신 자신을 넘겨주시고, 내주신 것으로 표현합니다. 그런 모든 일들이 다 예수님께서 피동적으로, 무기력하게 당하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사업의 주도권은 항상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교리서에서는 어떤 사람이 세례를 받고 신앙인이 되는 것은 하느님께서 그를 선택하신 것이고 뽑으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 종교 중에서, 또는 여러 신들 가운데에서 인간이 하느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여러 신들 가운데에서 야훼 하느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야훼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중단하고 냉담자가 되는 것은 자기가 예수님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물론 버림받은 원인은 그 자신에게 있습니다. 자기가 교회에 안 나가면 교회가 많이 아쉬워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자기가 예수님을 안 믿으면 예수님께서 많이 아쉬워하실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가 자기들이 에덴동산에 없으면 하느님께서 많이 아쉬워하실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처럼. 구원받기를 거부하는 인간들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안타까워하시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아쉬움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고향 나자렛으로 가셨습니다. 고향이니까, 아무래도 그곳이 가장 친숙하고 애정이 있는 곳이니까, 인간적으로 그곳을 먼저 선택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을 버리셔야 했습니다. 가장 먼저 찾은 고향을 가장 먼저 버려야 했던 예수님의 심정은? 하느님께서 만드신 최고의 작품, 첫 인간 아담과 하와를 쫓아내야만 했던 하느님의 심정은? (사순시기는 바로 그 하느님의 심정과 예수님의 심정을 묵상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우리는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고향에서 쫓겨나신 것이 아니라, 그 고향 나자렛이 예수님의 심판을 받고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사정하고 애원하는 것은 우리 쪽에서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에 들어오라고 사정하고 애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 송영진 모세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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