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 3.24,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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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1-03-28 | 조회수324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3.24 사순 제2주간 목요일 예레17,5-10 루카16,19-31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부자는 혼자 살 수 있어도 가난한 자는 혼자 못삽니다.
열려 있어 도움을 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푸른 하늘 안 나뭇가지들에서 오늘 복음의 가난한 라자로를 생각했습니다.
“참 넉넉하고 편안하다 자유롭고 자연스럽다. 하늘 품 안, 하늘 배경의 무수한 나뭇가지들 저렇게 살 수는 없나? 하늘 품, 하늘 배경으로 하늘 품, 하늘 배경의 나무같이.”
오늘 복음의 어떤 부자와 가난한 라자로의 대조가 의미심장한 화두입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회개의 표징입니다. 죽어서 가는 천국과 지옥이 아니라 이미 지금 여기서 시작된 천국이요 지옥입니다. 단적으로 말해 열려있을 때 천국이요 닫혀있을 때 지옥입니다. 어떤 부자는 외형상으로 행복해 보일지 몰라도 내면은 지옥입니다. 의식주 풍요해도 자기(ego) 안에 닫혀 있어 희망 없는 무기력하고 무의미한 삶이라면 두말 할 것 없이 지옥입니다. 어떤 부자에게서 이미 시작된 지옥이요, 가난한 라자로에게서 이미 시작된 천국임을 봅니다. 지금 여기서부터 천국을 살지 못하면 죽어서도 천국을 살지 못합니다.
위로 하늘에 닫혀 있고 옆의 이웃에 닫혀 있는 집에 어떤 부자입니다. 집이란 감옥에, 자기라는 감옥에 갇혀있는 어떤 부자입니다. 옛 시골집들은 우리 수도원처럼 늘 열려 있었는데 오늘의 집들은 단절 격리되어 닫혀있는 감옥 같습니다. 더불어 무관심으로 인한 하느님과 이웃 간 넘을 수 없는 깊어지는 구렁입니다. 오늘날의 많은 부자들 역시 물질만능주의의 돈과 외모지상주의의 몸의 우상 안에 갇혀 하느님과 영혼을 잊고 수인(囚人) 같이 살아갑니다. 이런 이들을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 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그는 사막의 덤불과 같아, 좋은 일이 찾아드는 것도 보지 못하리라. 그는 광야의 메마른 곳에서, 인적 없는 소금 땅에서 살리라.”
오늘 복음의 어떤 부자의 내면이 이러할 것입니다. 사실 이런 내면의 부자들은 얼마나 많겠는지요. 밖에서 볼 때는 천국일지 몰라도 내면은 지옥입니다. 완전히 자기(ego)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모습입니다. 어떤 부자에서 주목할 사실은 가난한 라자로와는 달리 이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불러 관계 맺으라고 있는 이름인데 ‘불러낼’ 이름이 없다는 것은 바로 철저히 닫힌 무명의 삶을 상징합니다.
‘하느님이 도우신다.’라는 뜻의 라자로 이름이 심오합니다. 가난한 이들은 모두 하느님이 도우시는 또 하나의 ‘라자로’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의 라자로는 외형상으로는 비참해 보이지만 내외적으로 활짝 열려있는 자유인의 모습입니다. 다음 주님의 말씀은 바로 이런 가난한 라자로들을 지칭하는 듯합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도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진정 가난한 이들은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이요 주님과 이웃을 향해 활짝 열려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복음의 가난한 라자로는 우리 모두를 구원에로 부르는 회개의 표징입니다. 닫혀있는 자기감옥을 열고 나와 가난한 이들과 나누며 가난한 이들이 되어 살라는 회개의 표징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당신과 이웃에 활짝 연 우리들의 이런저런 크고 작은 구렁의 상처를 치유해주시어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천국을 살게 하십니다.
“행복하여라, 온전한 길을 걷는 이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시편119,1).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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