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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비하신 아버지" - 3.26,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3-28 조회수354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3.26 사순 제2주간 토요일

미카7,14-15;18-20 루카15,1-3.11ㄴ-32

 

 

 

 

"자비하신 아버지"

 

 

 

오늘 복음은 하느님은 어떤 분이시고

우리는 어떤 사람인지 거울처럼 보여줍니다.

복음 중의 복음이요 마르지 않는 샘 같은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말씀을 통해

미카 예언자가 말한 자비하신 하느님의 모습이 잘 들어나고 있습니다.

 

“그분은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꺼이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고,

  우리의 허물들을 모르는 체해 주시리라.”

 

이런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미카 예언자요,

사순시기를 맞는 다음 우리의 기도이기도 합니다.

 

“당신께서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저희를 성실히 대하시고 자애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여

이 거룩한 미사 중 우리의 죄악을 없애시고,

우리를 성실히 대하시며 자애를 베풀어 주십니다.

오늘 새벽 성무일도 독서의 기도 역시

시편 136장 매 구절 마다 반복된 ‘당신의 자비는 영원하시다.’였습니다.

대자대비하신 하느님입니다.

잘 살아서 구원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로 구원을 받습니다.

하여 끊임없이 바치는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자비송입니다.

화답송 후렴도 이런 하느님의 고백입니다.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네.”

 

하늘에서 연원한 하느님입니다.

푸른 하늘 안 나목의 나뭇가지들에서

자비하신 하느님의 품을 묵상하며 쓴 글을 나눕니다.

 

 

하늘 품 안

하늘 배경한

무수한 나뭇가지들

넉넉하고 평화롭다

자연스럽고 자유롭다

하늘 품

하늘 배경으로

살 수는 없나

하늘 품안

하늘 배경한 나무로

살 수는 없나

 

하늘 품 같은 자비하신 아버지이십니다.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우리의 평생 과제입니다.

모든 아버지들의 참 된 아버지상을 보여주는 오늘 복음입니다.

어느 힘겹게 살아가는 가장의 고백을 잊지 못합니다.

 

“가장 노릇, 아버지 노릇 하기가 참 힘듭니다.

  힘들 때 마다 바라보는 렘브란트의 ‘자비하신 아버지’의 그림입니다.

  자비하신 아버지를 바라보며 위로와 힘을 받고,

  또 이 자비하신 아버지처럼 살아야하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합니다.”

 

자비하신 아버지 앞에 두 아들의 모습이 참 대조적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 대상은

작은 아들(세리와 죄인들)이 아닌

이들을 무시하는 큰 아들(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입니다.

외양상으로는 늘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 가까이 살았지만

마음은 멀리 떨어져 ‘아들’이 아닌 ‘종’처럼 살았던 큰 아들입니다.

반면 아버지의 집을 떠나

‘거지’처럼 살다가 회개하여 돌아 와

아버지의 ‘아들’로 살게 된 작은 아들입니다.

회개로 아버지께 돌아 온 작은 아들은

아버지의 자비를 절절히 체험했을 것입니다.

회개를 통해 자비하신 아버지를 닮게 되니

결국 회개의 여정은 자비의 여정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 두 아들을 대하는 모습에서 자비하신 아버지의 진면목이 잘 들어납니다.

감동적인 부분이라 그대로 인용합니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아버지께 돌아옴으로

존엄한 ‘아들’로서의 품위를 되찾은 작은 아들입니다.

과거의 일체를 불문에 붙이시고

돌아 온 아들을 그냥 반갑고 기쁘게 맞이하는 자비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작은 아들에 대하여 불만을 토로하는

큰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반응도 감동적입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큰 아들의 편협함이나 옹졸함, 냉정함에 대한 일체의 언급 없이

‘있는 그대로’의 큰 아들을 받아들이며

다만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시며 호소하시는 자비하신 아버지입니다.

과연 큰 아들로 상징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결국 큰 아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으로

오늘날의 큰 아들들인 사제나 수도자들을 향한 말씀 같기도 합니다.

문제는 작은 아들이 아니라 큰 아들입니다.

늘 아버지의 집에서 잘 산다고 자부하지만

인정머리 없는 ‘종’처럼 살아가는 큰 아들 같은 신자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이들의 회개가 참으로 절실한 데 어렵기 짝이 없습니다.

자비하신 주님은

회개하여 당신께 돌아온 작은 아들 같은 우리를 위해

베풀어 주신 생명의 미사잔치를 통해

존엄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품위를 회복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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