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생활] 거룩한 침묵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어둠 속에서 빛줄기가 들려온다. 나를 믿어라. 믿어라. 그냥 믿어라. 어둠 속에서 있지 말고 그냥 걸음을 옮겨라. 내 모든 것을 다 내어 줄 터이니 거저 가져라. 대가는 없단다. 거저 가져라. 다만! 다만! 꼭, 행복해야 한단다. 꼭, 기쁘게 살아야 한단다. 꼭, 너도 나처럼 사랑해야 한단다. 아멘.” 오래전 큰 고통 중에 있던 한 교우가 성목요일 밤, 성체 앞에 오랫동안 머물고 기도하면서 주님에게서 받은 응답으로 적어 보낸 긴 편지의 한 대목을 먼저 소개했다. 하느님에 대한 원망과 한탄의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끝없는 어둠 속을 걷던 지친 영혼이 당신 앞에서 한참을 울부짖고 난 뒤에야 찾은 깊은 침묵 속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말씀은 고통받던 한 가련한 여인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메마른 그녀의 마음에 한줄기 빛처럼 희망을 피어나게 했다.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은 그렇게 자신이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깊은 침묵 속에서 선물처럼 주어졌다. 흔히 기도를 하느님과의 대화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주 묻는다. ‘하느님의 말씀은 어디에 있나? 어떻게 들을 수 있나? 고통 중에 부르짖는 인간의 외침에 무심한 하느님, 좀처럼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이 아니시던가?’ 침묵 안에 깊이 머물러 본 이만이 이 기도의 의미를 알 수 있으리라. 하느님께서는 침묵 안에 현존해 계심을, 침묵 속에서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음을, 침묵 가운데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주시는 그분의 따스한 손길을 느낄 수 있음을, 그리고 침묵 없는 기도는 일방적인 독백에 지나지 않음을 말이다.
침묵 안에서의 대화 침묵은 사랑의 언어이다. 사랑하는 이들만이 침묵 안에서 대화할 줄 안다. 수많은 말로 자신을 드러내고 치장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쏟아 내기보다 사랑하는 이의 말에 먼저 귀 기울일 줄 안다. 또한 서로 마주한 그윽한 시선을 통해서도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헤아릴 줄 안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들의 참된 일치는 말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더 잘 드러나기 마련이다. 사실 영성 생활에서도 침묵은 인간이 하느님과의 일치를 체험하고 심화하는 바탕을 이룬다. 전례 안에서 하느님과 인간이 만난다. 한 인간의 개인적인 기도와 만남 안에서도 침묵이 이처럼 중요한데, 하느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탁월한 장인 전례 거행 안에 침묵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분과 소통할 수 있겠는가? 실상 하느님께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지만, 우리가 침묵하지 않는다면 그분의 현존을 알아채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침묵 없이 거행되는 전례는 온통 인간의 행위로만 이루어진 어떤 생산적인 활동처럼 여겨지기 쉽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에서 강조된 특별한 측면들 가운데 하나는 바로 거룩한 침묵에 관한 것이다(전례 헌장, 30항 참조). 「성무일도 총지침」은 침묵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음속에 성령의 목소리가 더욱 완전히 들려오게 하고 우리의 개인 기도가 하느님의 말씀과 교회의 공적 목소리에 더욱 결합되기 위하여, 적절한 경우에는, 시편 후 후렴을 반복한 다음에 … 독서나 성경 소구를 한 다음에 또는 응송의 앞이나 뒤에 한 순간의 침묵을 삽입시킬 수 있다. 그러나 기도의 체제를 망가뜨리고 참석자를 당황케 하거나 싫증 나게 하는 침묵의 순간을 삽입시키는 일은 피해야 한다”(202항). 거룩한 침묵 교회의 가르침과 전례 지침들은 전례 거행의 역동성 안에서 침묵이 지닌 의미와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침묵은 내적인 풍요로움에서 흘러나오는 인간의 특별한 마음의 태도를 나타낸다. 인간은 창조주이신 하느님 앞에 있을 때 무엇보다 침묵을 통해 그분께 찬미를 드린다. 침묵하는 것은 하느님의 현존이 언제나 필요한 피조물로서 우리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다. 인간의 이러한 내적 자세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부르심에 상응하는 행위이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모인 교회는 전례 안에서 당신 얼굴과 당신 구원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마주한다. 따라서 거룩한 예식에 참여하기에 앞서 침묵하는 것은 하느님과의 만남 전에 취해야 할 신앙인의 첫 번째 태도이다. 특히 성찬례에 앞서 공동체에 필요한 기도를 공동으로 함께 바치더라도 그 시작 전에 잠깐의 침묵 시간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외적이고 내적인 침묵의 순간을 통해 모든 거룩한 행위의 첫째 조건인 고요함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 고요함 속에서 신자들은 거행될 신비에 경건하고 합당하게 참여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하고, 다 함께 영적인 공간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갖추게 된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은 여러 예식 순간에 지켜야 할 침묵을 성찬례 거행의 본질적 요소로 제시한다. “거룩한 침묵은 거행의 한 부분이므로 제때에 지켜야 한다. 침묵은 각각의 거행에서 이루어지는 순간마다 그 성격이 다르다. 참회 행위와 기도의 초대 다음에 하는 침묵은 저마다 자기 내면을 성찰하도록 도와주고, 독서와 강론 다음에 하는 침묵은 들은 것을 잠깐 묵상하게 하며, 영성체 후에 하는 침묵은 마음속으로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고 기도를 바치도록 이끌어 준다”(45항).
마음을 하나로 모으게 시작 예식의 참회 행위에서 사제는 거룩한 신비를 거행하기에 앞서 우리의 죄를 반성하도록 초대하면서 잠시 침묵을 지킨다. 이 침묵 가운데 하느님 앞에서 우리 모두가 부족한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 또한 성찬례가 지향하는 일치를 이루는 행위이다. “기도합시다.” 하고 시작되는 초대의 말 다음에 침묵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이때 공동체는 하느님 앞에 있음을 의식하면서 주례자의 기도에 결합되도록 마음을 모음으로써 또한 일치를 드러낸다. 이러한 침묵은 전례에 참여하는 이들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게 도와준다. 특히 말씀 전례에서 침묵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고려되어야 한다. 이때 지켜야 할 침묵의 순간은 마음을 모으는 데 방해가 되는 온갖 형태의 조급함을 피하고 묵상에 도움이 되도록 회중을 이끄는 탁월한 자리가 된다( 「로마 미사 경본」, 56항 참조). 또한 적절한 침묵의 순간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기도로 응답할 준비를 갖도록 신자들을 이끈다. 그리고 우리가 전례 안에서 하느님의 행위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해 준다. 이러한 침묵의 의미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경청함으로써 그분을 손님이 아니라 ‘주인’으로 섬길 줄 알았던 마리아의 태도에서도 잘 나타난다(루카 10,38-42 참조). 아무도 빼앗지 못할 기쁨, 곧 마리아가 택한 좋은 몫은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묵상할 수 있는 바탕으로서 침묵이 갖는 중요성을 상기시켜 준다. 끝으로 주님과 온전히 하나 되는 일치의 기쁨, 곧 영성체 후에 하는 침묵의 순간이 있다. 성체성사는 우리 안에서 날마다 거행되는 그리스도의 탄생이며 그분과의 깊은 일치의 표현이자 우리 삶의 원천이다. 이 놀라운 사랑의 선물에 어찌 감사와 찬미를 드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나의 빵을 먹음으로써 한 몸을 이룬 우리는 이 침묵 가운데 그리스도와의 일치에 힘입어 세상 속에서 복음을 선포해야 할 사명이 있음을 깨닫도록 초대받는다. * 김기태 요한 - 인천교구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전례학을 가르치고 있다.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이다.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8년 1월호, 김기태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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