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4월 10일 사순 제5주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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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1-04-10 | 조회수711 | 추천수16 | 반대(0) 신고 |
4월 10일 사순 제5주일-요한 11,1-45 “우리의 친구 라자로가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 <영원히!>
우리 국민들의 노령화가 점점 가속화되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가끔씩 문상을 가보면 요즘 80은 장수한 축에 끼지도 못합니다. 90 넘어 돌아가시는 분들이 수두룩합니다. 아직 생존해계시는 100세 이상의 노인들이 한국에만 1,000여명 남짓 된답니다.
세계 최고령 남자는 올해로 만 112세를 넘기신 다나베 도모지라는 할아버지랍니다. 기네스 협회 관계자가 인증서를 수여하러 가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할아버지, 몇 살까지 살고 싶습니까?”
112세 된 할아버지는 거침없이 대답하셨답니다.
“영원히!”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너무 오래 살아 미안하지만, 얼른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허락된다면 쭉 나가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누구에게나 필연적으로 찾아옵니다. 위 할아버지께서 “영원히 살고 싶다”고 하셨지만, 그분의 삶이 앞으로 며칠 남았는지 모를 일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그 어떤 것도 확실한 것이 없지만,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그 누구든 상관없이 언젠가 반드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으며, 또한 다가오는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류역사상 그 누구도 죽음의 땅으로 한번 건너간 사람 이상 다시 이쪽 세상으로 건너오지 못했습니다.
물론 가끔씩 예외적인 상황이 없지 않았겠지요. 외관상으로는 죽은 듯했지만, 아직 완전히 목숨이 덜 떨어진 상황에서 사망진단을 내렸다가, 다시금 생명이 회복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라자로는 그런 상황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완벽하게 죽었습니다. 그래서 장례까지 치렀습니다. 염을 했고, 무덤에 묻었고, 바위로 봉하기까지 했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 시신이 부패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라자로가 소생되는 은총을 입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죽음조차 지배하시는 전지전능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돋보이는 복음입니다. 죽었던 사람도 일으키시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썩어가는 시신을 일으켜 세우시는 재창조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창조주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생명과 죽음을 좌지우지하는 힘이 부여받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생명 자체이실 뿐만 아니라 생명의 주관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땅에서 생명의 땅으로 건너가게 이끄시는 관문이십니다.
결국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죽음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삶의 이정표로 삼는 수밖에 없습니다.
라자로는 한번 소생했지만, 영원히 살지는 못했습니다. 인간의 한계와 조건을 뛰어넘지는 못했습니다. 20년, 30년이 흘러 그는 또 다시 죽음 앞에 직면하게 되었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흙에 묻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라자로의 소생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분은 당신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이 세상의 죽음을 물리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부활로 온 세상 사람들이 죽음을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까지 선물로 주셨습니다.
매일 아침 우리에게 주어지는 또 다른 하루는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선물로 주시는 ‘작은 부활’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한 조각’입니다.
오늘 지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하루, 감사하면서, 기뻐하면서, 찬미하면서 최대한 만끽하는 것, 그것이 생명의 주관자이신 예수님께 우리가 드릴 참된 예배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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