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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 4.10,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4-10 조회수378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말씀)

 

2011.4.10 사순 제5주일

에제37,12ㄷ-14 로마8,8-11 요한11,1-4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때로 무덤처럼 보였던 회색 빛 겨울에서

생명의 문 활짝 열린 봄입니다.

새벽 5시쯤 벌써 봄새들의 경쾌한 노래 소리에

무덤 같은 밤이 서서히 열려가는 느낌입니다.

 

“우리의 친구 라자로가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

 

죽음의 잠에서 라자로를 깨어 살리신 주님께서

역시 영적 나태함으로 잠들어 있는

당신의 친구들인 우리를 깨워 살리시고자

이 거룩한 생명의 미사잔치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언젠 가 유럽수도원 사진이 나와 있는 달력을 보는 순간,

깨달음 같은 체험을 잊지 못합니다.

전에는 그 웅장함에 감탄하던 벽돌 건물의 수도원들이

꼭 자유를 억압하는 감옥 같이 보였습니다.

거대한 건물 속에 수도자들이

왜소하기가 꼭 감옥의 죄수 같다는 불경(?)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요즘 수도원 앞에 건설되는 대형의 아파트 건물들을 보면서도 연상되는 게

거대한 감옥입니다.

하느님 주신 아름다운 자연의 집에다

왜 감옥 같은 돌집을 좋아해 그 속에 들어가 사는 지

참 단순 무지한 묵상도 해봤습니다.

감옥과 무덤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감옥과 무덤이 상징하는바 참 깊습니다.

자유롭다 하나 실상 감옥 속에 수인처럼

부자유하게 살아가는 이들도 많을 것이며,

살아있다 하나 실상 무덤 속에 죽어 사는 사람들도 꽤 많을 것입니다.

감옥 같은, 무덤 같은 집은 아닙니까?

감옥 같이, 무덤 같이 닫힌 몸이나 마음은 아닙니까?

우리 마음의 감옥 문을, 무덤 문을 두드리는 주님이십니다.

 

 

 

무덤에서 나오십시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무덤 문 앞에 장애물인 돌을 치우게 한 후

라자로를 불러내신 주님은

우리 ‘마음의 무덤’ 문 앞에서 우리를 나오라 부르십니다. ‘

하느님의 도우신다.’ 라는 이름 뜻대로

우리 모두 또 하나의 라자로입니다.

이기심, 탐욕, 불신, 절망과 죽음 등,

자기(ego)의 무덤에서 나와

빛과 생명의 활짝 열린 하느님 나라를 살라는 말씀입니다.

육신의 죽음보다 더 심각한 것이

절망으로 인한 영혼과 정신의 죽음입니다.

희망 없는 절망의 어둠 속이 바로 무덤이자 지옥입니다.

살아있다 하나 실상 죽어있는,

그대로 무덤 속의 삶입니다.

그대로 오늘의 현실 같습니다.

하여 희망을 잃고 자살하는 이들이 그리도 많은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죽은 라자로를 무덤에서 살려내신 주님은

우리를 자기(ego)의 무덤으로부터 살려내심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다음 에제키엘의 말씀은

그대로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향한 구원의 복음입니다.

 

“나 이제 너희 무덤을 열겠다.

  그리고 내 백성아,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겠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절망과 죽음의 무덤을 열고 우리를 구출해 내시어

하늘나라의 행복을 살게 하십니다.

마르타와 마리아 두 자매의

주님을 원망하는 것 같은 이구동성의 다음 말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지나고 나서 후회하면 언제나 늦습니다.

지금 여기서 주님을 떠나지 않고

주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의 자유를 누리는 자가 진정 지혜로운 자입니다.

십자가의 길 12처(예수님께서 십자가위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합니다)

기도문 후반의 내용도 생각납니다.

 

“구세주 예수님,

  혹시라도 영원히 주님을 떠날 불행이 닥칠 양이면

  차라리 지금 주님과 함께 죽는 행복을 내려주소서.”

 

주님을 떠날 때 무덤 속 영적 죽음의 삶이요,

주님께서 함께 계시면

그 어디나 자유로운 영원한 생명의 하늘나라입니다.

 

 

 

성령을 받으십시오.

 

자기(ego)의 무덤에서 우리를 불러내신 주님은

우리에게 참 좋은 무상의 선물,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이 충만할 때 비로소 살아있는 삶이요,

성령이 빠지면 그대로 무덤 같은 공허한, 얼빠진 삶입니다.

무덤에서 끌어 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의 영을 선사하신 주님은

우리에게도 똑같은 성령을 선사하십니다.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주어 너희를 살린 다음,

  너희 땅으로 데려다 놓겠다.”

 

바로 이 미사를 통해

당신의 영을 넣어주어 우리를 살린 다음

우리 삶의 자리에서 천국을 살게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하느님의 영이 우리 안에 사시기만 하면

우리는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우리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의 진정한 생명은 성령입니다.

성령이 우리의 생명이 될 때

말 그대로 영원한 생명에 참 사랑의 삶이요

이게 우리 인생의 모두입니다.

바로 성령이 생명이 된 우리들은 죽음을 넘어 영원한 삶을 삽니다.

 

 

 

주님께 믿음을 고백하십시오.

 

믿음의 고백도 은총입니다.

성령의 은총 있어야 믿음의 고백입니다.

성경의 언어는 대부분 고백 언어입니다.

끊임없이 진정으로 주님께 믿음과 사랑, 희망을 고백하는 우리들이요

고백과 더불어 견고해지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지난주일 복음의 주인공, 태생 소경은

눈 뜬 후 ‘주님, 저는 믿습니다.’ 고백했고,

오늘 마르타 역시 주님을 고백합니다.

마르타의 고백을 이끌어낸 주님의 말씀이 오늘 복음의 절정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마르타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물음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마르타의 고백은

그대로 초대교회신자들의 고백이자 우리의 고백입니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주님은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살아있음이 부활이요,

하느님 안에서 영원히 살아계신 영원한 생명의 주님을 믿을 때

우리 역시 죽더라도 살고,

이미 지금 여기서 죽음을 넘어 영원한 삶입니다.

라자로는 주님을 믿어 죽었다가 살아났고,

우리 역시 주님을 믿어 부활하여

죽음의 무덤에서 해방되어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하느님 안에 살아있는 모든 이들’,

즉 천상영혼과 연옥영혼을 포함한 지상영혼들

우리 모두가 함께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은총 가득한 성체성사입니다.

 

 

 

주님은 사순 제 5주일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무덤에서 나오십시오.

 

사랑의 주님은 여러분을 ‘자기(ego)의 무덤’에서 불러내십니다.

 

성령을 받으십시오.

 

사랑의 성령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늘 성령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여십시오.

성령 받아야 충만한 존재의 삶입니다.

성령 빠진 삶, 공허한 껍데기의 무덤 같은 삶입니다.

 

주님께 믿음을 고백하십시오.

 

주님을 믿고 고백할 때 하느님의 영광을 봅니다.

참 행복 역시 고백에 있습니다.

주님께 믿음을, 사랑을, 희망을, 찬미와 감사를 고백할 때

끊임없이 샘솟는 기쁨과 평화요 바로 이 미사은총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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