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진리가 너희를'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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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복순 | 작성일2011-04-13 | 조회수484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진리가 너희를' (요한 8,31-42) -유광수 신부-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은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모든 것에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를 누리고 싶어도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죽음이라는 감옥, 죄의 감옥, 율법(모든 법)의 감옥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감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지만 인간은 벗어날 수가 없다. 누군가가 나를 이 감옥에서부터 꺼내주지 않으면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나올 수 없다. 즉 자유를 누릴 수 없다. 아무리 자유를 누리고 싶다는 욕망은 있어도 감옥에서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원망하고 비관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그럼 누가 우리를 이 감옥에서 꺼내 줄 수 있는가? 누가 우리에게 자유를 줄 수 있는가?
사실 우리에게 이 선물보다 더 큰 선물은 없다. 그 동안 우리는 얼마나 자유를 갈망해왔는가?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가 아닌가? 남의 지배를 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고 싶어서 돈을 벌고 권력을 잡으려고 하고 배우고 하는 모든 것은 알고 보면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이다.
인간은 이렇게 자유에 대한 목마름이 있고 굶주려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 자유는 내가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는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다. 이 선물은 오직 한 분 즉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에게 줄 수 있다. 따라서 나는 다른 분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한테만이 이 자유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자유를 자기 힘으로 쟁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 힘으로 이 자유를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자유와 평화를 얻는다는 명목아래 전쟁을 일으키고 폭력을 사용한다. 그래서 또 다른 도전을 받고 원수가 되고 구속받는다.
예수님은 어떻게 우리에게 자유를 선물로 주시는가? 진리를 가르쳐 주심으로써 자유를 누리도록 해주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진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진리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진리 안에서 산다는 것이다. 진리란 무엇인가?
신약에서 진리란 단어는 25번 사용하였는데 그 중에서 16번을 요한 복음에서 사용하였다.
요한에게 있어서 진리란 어떤 사상이 아니다. 요한 복음에서 진리란 예수라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인격을 말한다. 즉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행하신 모는 것이 다 진리이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에 그 말씀 안에 사는 것이 곧 인간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말씀 안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나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은 모두 이 말씀에서 나와야 한다. 말씀에서 길러내야 한다. 그것이 진리를 사는 것이다. 나의 모든 말과 행동이 말씀에서 길러내려면 늘 말씀을 되새겨야 한다. 말씀을 되새긴다는 것은 말씀을 알아들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내가 진리를 생활하려면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깨닫지 못한다면 진리를 살아갈 수 없다. 진리를 생활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진리를 듣고 그 말씀이 무슨 뜻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깨달은 그 말씀대로 생활하는 것이다. 즉 깨달은 그 말씀대로 나도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럴 때 나에게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다. 자유는 진리를 깨닫고 생활할 때 주어지는 결과이다. 진리를 깨달아야 내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게 되고 잘못된 것을 알아야 거짓에서 진리에로 돌아올 수 있다. 거짓에서 진리로 돌아 설 때 거짓에서 해방되는 것이고 대신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깨달아야할 진리란 무엇인가? 하느님이 나의 아버지이시고 나는 그분의 자녀라는 것이다. 이런 관계를 올바로 알아야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다. 아버지를 신뢰할 수 있고 아버지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다.
내가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라는 것, 이것이 나의 신원이다. 나의 정체이다. 따라서 나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야 한다.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가 아버지와 자녀라는 관계라는 것을 깨닫고 그런 관계 속에서 모든 것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의 참 모습이기 때문이다. 나의 참모습을 되찾는 것이 나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다. 다른 모습이 아니라 나의 참모습인 하느님의 자녀의 자리를 되찾고 그 자리를 유지할 때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왜냐하면 아버지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종이 되셨다. 나를 위해서 종이 되셨다는 것은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나를 사랑해주시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은 나도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요, 그것은 구체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다 같은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형제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사랑에 있고 그 사랑은 다른 이를 섬기는 데 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자유를 주시려고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여러분의 육정을 만족시키는 기회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사랑으로 서로 종이 되십시오."(갈라5,13)
이러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또한 고행을 통해서 깨닫는 것도 아니다. 다만 말씀을 통해서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을 때 가능한 것이다. 즉 내가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라는 진리를 개달을 때 가능한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은 바로 이 진리를 깨닫게 해주러 오신 것이다.
인간은 누군가로부터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행복을 느낀다. 즉 인간은 다른 이로부터 아무 조건없이 받아들여질 때 행복하고 자유를 느낀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를 찾아 다닌다. 그러다가 자기를 아무런 조건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질 때 그에게서 행복을 느끼고 자유를 느끼기 때문에 그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
즉 그를 위해 살기도하고 그를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존재인 것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온전히 투신할 상대자를 만나지 못하면 행복하지 못하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자기 전부를 투신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을 전부 투신해서 사랑해야할 분이 바로 하느님 아버지이시라는 것을 아는 것이 곧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버지를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을 투신할 때 자유를 느끼는 것이다. 진리를 통해서 자유로운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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