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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진리에 복종하는 삶" - 4.22,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4-22 조회수525 추천수12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4.22 주님 수난 성금요일

이사52,13-53,12 히브4,14-16;5,7-9 요한18,1-19,42

 

 

 

 

 

"진리에 복종하는 삶"

 

 

 

오늘은 ‘진리’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예수님의 말씀에 이은

다음 빌라도의 물음은 우리 모두에게 던져지는 화두입니다.

 

“진리가 무엇이오?”

 

이에 앞서 주님의 다음 말씀도 주목됩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진리에 속한 사람들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주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임을 깨닫습니다.

 

죽어있는 진리가 아닌 생명과 빛으로 충만한 진리입니다.

바로 주님이, 주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주님의 다른 이름이 진리입니다.

주님 안에 머물러 살 때 깨닫게 되는 진리요

이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진리를 증언하러 오신 예수님의 삶은 그대로 살아있는 진리였습니다.

진리와 하나 된 삶이었기에 참 자유로우셨습니다.

진리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신 예수님은 그대로 하느님의 진리입니다.

 

어제는 제자공동체의 중심에서

제자들을 발을 씻어주시는

하느님의 진리이신 주님을 내려다보았고

오늘 우리는 공동체의 중심에

십자가에 달리신 하느님의 진리이신 주님을 올려다봅니다.

 

오늘 수난 현장에서

하느님의 살아있는 진리이신 예수님의 당당함이 모든 적수들을 압도합니다.

마치 예수님은 죄수이면서도 주인공 같고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 같습니다.

경비병도 빌라도도 군중들도 모두 바람에 날리는 갈대처럼

참 내적으로 허약해 보이고 무언가에 사로잡혀 있는 불안한 모습들입니다.

 

제자리에 제정신의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진리를 떠난 결과입니다.

 

 

그러나 소수의 진리에 속한 자유로운 참 사람들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있던 성모님과 애제자, 여러 자매들,

그리고 예수님의 시신을 거둔 아리마태오 출신 요셉,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가지고 온 니코데모입니다.

 

오늘 십자가의 예수님은 성모님께 말씀하십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딸)입니다.”

 

우리 모두 성모님의 아들딸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어 사랑 받던 제자는 물론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

 

성모님의 아들딸 되어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시고 진리 안에 살 때

비로소 자유로운 삶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두 임종어가 참 의미심장합니다.

 

 

“목마르다.”

평생 하느님의 진리에 목말라했던 예수님의 삶을 압축합니다.

 

“다 이루어졌다.”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함으로

하느님의 진리를 100% 살아 낸 삶에 대한 예수님의 감사의 고백입니다.

 

 

 

어느 사찰의 ‘불이문(不二門)’이라는

화두와도 같은 일주문 이름의 그 깊은 뜻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바로 삶과 죽음이, 성(聖)과 속(俗)이,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몰라서 눈이 멀어 삶과 죽음,

거룩한 것과 속된 것,

부처와 중생이지,

깨달아 눈뜨면 영원한 삶에,

모두가 거룩한 것들이요,

모두가 부처요 하느님의 자녀라는 이야기입니다.

 

불이의 진리가 참 심오합니다.

하느님 안에 이런 진리의 깨달음 있어 자유와 겸손입니다.

예수님은 몸소 이런 불이의 진리를, 사랑을 체득하여 사셨기에

모두를 차별 없이 사랑하셨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이사야 예언자 역시 불이의 진리를 깨달았음이 분명합니다.

수난 받는 고난의 종에서 우리의 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하느님께로부터 온 진리의 증언자 의로운 나의 종은

  많은 이들을 의롭게 하고, 그들의 죄악을 짊어지리라.”

 

십자가의 달리신 예수님과 우리는 둘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게서 우리의 죄를 보고

우리의 고난에서 주님의 고난을 볼 수 있기 때문이요,

이렇게 주님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할 때

주님과의 깊은 일치요 풍성한 진리의 삶입니다.

 

 

 

눈 뜨면 행복이요 구원이듯이 눈 뜨면 진리의 발견입니다.

지금 여기 살아계신 진리이신 예수님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하여 살아계신 진리이신 주님 안에 걸으며 진리이신 주님께 순종할 때

참 평화와 기쁨, 행복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주님은 당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진리와 생명의 하늘 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니 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옥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자비를 얻고 은총을 받아 필요할 때에 도움이 되게 합시다.

 

우리 모두를 위하여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신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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