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자유로운 삶 -*반영억라파엘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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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 | 작성일2011-04-24 | 조회수429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예수 부활 대축일 (요한20, 1-9)
자유로운 삶 -*반영억라파엘신부*-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축하드리며 우리도 거듭나는 부활의 삶을 충직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부활은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을 가로막는 장애에서 매 순간 다시 살아나길 희망하며 부활의 삶을 자유라는 측면에서 묵상하는 가운데 깨우침을 주시길 바랍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사람은 이 자유의지를 사용함으로써 사람의 사람됨을 확인 받게 됩니다. 창세기말씀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었다’는 것은 ‘피조물’로써의 존재조건을 깨뜨렸다는 데 핵심이 있습니다. 곧 물고기가 뭍으로 뛰어나온 격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자유를 왜곡, 남용하여 피조물의 존재성을 거부하고 마침내 하느님으로부터 이탈한 인간은 죄의 노예상태로 살게 되었고 오히려 부자유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사실 거짓이나 악을 선택하면 일시적으로 자유로울 것 같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죄의 노예가 되고 후회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인간적인 욕심을 선택하면 자유가 아닌 속박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살면 당장은 어렵고 힘들지 모르지만 영원히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8,31-32)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의 삶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진리 안에 머물고 그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매번 강론을 길게 하시는 신부님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강론을 시작하면 아예 눈을 감고 쉬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신부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믿습니까?” 하고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깜박 졸고 있던 신자분이 깜짝 놀라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신부님 말씀은 정말 질립니다. 질리고 말고요!” 진리의 말씀은 질릴 수가 없는 말씀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묻히지만 강한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물질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되살아납니다. 물질적인 몸이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15,42-44) 하고 말하였습니다. 부활한 몸과 육적인 몸의 차이는 바로 자유에 있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몸은 제한에 묶여있지만 영적인 몸은 경계, 한계, 속박에 더 이상 매이지 않는 자유의 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그야말로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나는 내가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합니다.”(로마7,15) “나에게 원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좋은 것을 하지는 못합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 그래서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하면, 그 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은 죄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법칙을 발견합니다. 내가 좋은 것을 하기를 바라는데도 악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로마7,19-23) 하고 말합니다. 이만큼 자유를 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자유를 선택해야 하고 또 누려야 합니다. 진리 안에서의 자유야말로 부활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좋고 금실이 좋다고 소문난 부부가 이스라엘로 성지 순례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불행이도 아내가 그곳에서 병이 나서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은총이 많은 성지에 묻기를 적극적으로 권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남편은 꼭 고향으로 옮겨가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장의사에게 귓속말로 살짝 물었습니다. ‘이곳은 죽은 사람이 살아난 적이 있다던데요. 맞나요?” 사람의 속은 알 수가 없습니다. 겉으로는 좋아보여도 속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고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인 것 같은데 속은 누구보다도 깊고 넓은 마음을 가진 분도 있습니다. 사실 사람은 어려움을 당해봐야 그 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이나 처지에서도 변함없는 사랑의 관계를 형성하여야 합니다. 삶의 부활은 바로 사랑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성인들의 기쁨은 사랑으로 사는 것입니다. 인간의 충만성은 사랑으로 죽는 것입니다. 애덕과 사랑을 거느리는 곳, 그런 곳에 하느님이 계십니다.”(까롤로 까레또) 그러므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주님과 하나 되어야 그분과 함께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증오가 그대를 얽어매는가? 용서하라. 자유로워질 것이다. 이기심이 그대를 속박하는가? 사랑하라. 자유로워질 것이다. 죄가 그대를 괴롭히는가?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자유로워질 것이다. 재물이 그대를 집착하게 하는가? 나눠라. 자유로워질 것이다. 죽음이 그대를 두려움에 가두는가? 부활을 믿어라. 자유로워질 것이다. (차동엽)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가 부활의 희망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활은 이 세상에 살던 개똥이의 고유성과 인격 전체의 부활을 말합니다. 말하자면 그의 인간성에 대한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서 부활을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부활을 희망하는 만큼 삶의 부활을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를 하느님의 뜻대로 쓸 수 있는 기쁨을 차지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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