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만찬으로의 초대] (3)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성찬례
일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 의식해야 - 렘브란트 作 ‘엠마오의 저녁식사’.(1648) 미사 거행의 의미를 밝혀주는 아름다운 복음 이야기가 있다. 십자가 사건으로 깊은 절망과 슬픔에 빠진 두 제자가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 이야기다.(루카 24,13-35) 두 제자의 여정은 시작 예식, 말씀 전례, 성찬 전례, 마침 예식으로 이루어진 미사 거행의 순서에 비추어 묵상해 볼 수 있다. 우리도 이 여정을 따라서 미사 안에서 절망에서 희망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나아가는 은혜를 체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신의 모든 삶을 걸고 따랐던 스승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자 상심한 두 제자는 엠마오라는 마을을 향해 길을 떠난다. 비탄과 상실로 가득 찬 슬픔의 귀향길이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그네의 모습으로 그들과 함께 길을 걸으시지만, 제자들은 “눈이 가리어”(루카 24,16)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만큼 십자가 사건이 제자들에게 가져다 준 충격은 컸다. 오늘날에도 많은 신자들이 자신의 것이든 세상의 것이든 일상의 고통과 아픔으로 부서진 마음을 고스란히 안고서 미사에 온다. 그리고 미사 때마다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며 외친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이 기도만큼 미사 시작 때에 우리가 지녀야 할 마음의 자세를 대변해주는 표현도 없으리라. 이 간절한 외침은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서 나와 극심한 절망 속에서도 더디지만 서서히 되살아나야 할 신앙의 기쁨을 바라보도록 해 준다. 주님께서는 때로 낯선 이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서 함께 길을 걸으시며 물으신다. “무슨 일이냐?”(루카 24,19)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씁쓸한 기억의 저편에 묻어두려고 했다. 실상 그들이 느끼는 모든 절망의 근원에는 “그분은 보지 못했습니다”(루카 24,24)라는 말에 담긴 ‘하느님의 부재 체험’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처럼 우리도 고통스런 일상 안에 감추어진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 답답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엠마오의 제자들처럼 우리에게도 일상의 구체적인 사건 속에 숨겨진 의미를 깨닫도록 이끌어 줄 삶의 동반자가 반드시 필요함을 느낀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두 제자와 함께 길을 걸으시며 친히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루카 24,27) 이는 구약과 서간의 봉독을 지나 복음 선포에서 정점을 이루는 말씀 전례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제자는 이 말씀의 빛으로 속에서 마음이 타오름을 느꼈다고 고백했다.(루카 24,32 참조) 한 번이라도 말씀에 힘입어 가슴이 뜨거워지는 체험을 해 본 이는 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임을, 그래서 때로 지친 영혼에 위로와 기쁨이 되고 어둠 속을 걷는 이에게 희망의 한 줄기 빛을 던져준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하느님 말씀에 사로잡힐 때 그 말씀 안에 더 머물고 싶은 갈망이 솟구침을 느낀다. 어느덧 엠마오란 마을에 이른 두 제자는 예수님을 붙들고 자신의 집에 초대함으로써 이 열망을 표현했다.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루카 24,29) 이 초대는 미사에서 신앙 고백과 예물 준비의 순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 행위와 함께 우리는 예수님과의 만남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자 성찬례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손님으로 초대받았지만 예수님은 더 이상 손님이 아니라 주인으로서 식탁에서 친히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신다. 이 주객전도의 행위 안에서 제자들은 비로소 ‘눈이 열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본다. 이로써 최후의 만찬에서 고독한 모습으로 빵을 떼어 나누어 주셨던 주님께서 이제 제자들과 온전한 일치 속에서 당신의 현존을 드러내신다. 제자들이 ‘빵을 떼어 주시는’ 이 단순한 행위로도 그분을 알아보게 된 것은 말씀의 빛으로 이미 그들의 마음이 불타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루카복음은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이 충만한 일치의 순간에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루카 24,31)고 전한다. 제자들이 주님의 현존을 깊이 체험한 바로 그 순간 그들의 절망의 원인이었던 ‘주님의 가시적 현존’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신앙의 본질은 일상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고 깨닫는 데 있다. 우리가 열 두 제자처럼 예수님을 직접 보고 듣고 만질 수 없다 하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예수님께서는 미사의 영성체에서 탁월한 방식으로 이 일치에 이르는 길을 우리에게 남겨 주셨기 때문이다. 엠마오의 두 제자가 걸었던 여정의 마지막 단계는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의 사명과 관계가 있다. 주님 말씀으로 타올랐던 뜨거운 마음과 ‘눈이 열려’ 그분의 현존을 알아본 경이로운 체험을 간직한 채 제자들은 더 이상 엠마오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여정의 출발점이었던 예루살렘을 향해 다시 돌아갔다.(루카 24,33) 이처럼 부활한 예수님과의 만남과 친교는 엠마오의 두 제자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골방이란 자기만의 고립된 세계에 갇혀 있던 비겁한 ‘제자’가 더 이상 아니다. 복음의 기쁨을 전하기 위해 세상 속에 파견된 존재, 곧 ‘사도’가 된 것이다. 미사의 마침 예식에서 우리도 세상 속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존재로 살아가도록 파견된다. * 김기태 신부(인천가대 전례학 교수) - 인천교구 소속으로 2000년 1월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8년 2월 4일, 김기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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