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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05-16 조회수1,047 추천수19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5월 16일 부활 제4주간 월요일
 

 
I am the good shepherd.
A good shepherd lays down his life for the sheep.
(Jn.10.11)
 
 
 
제1독서 사도행전 11,1-18
복음 요한 10,11-18

사실 저는 서울 갈 때에는 차를 잘 가지고 가지 않습니다. 길이 많이 막히기도 하고, 또한 주차할 곳이 마땅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전철을 잘 이용합니다. 그런데 모임이 길어져서 전철이 끊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럴 때면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집에 와야 합니다. 그것도 미터기에 찍힌 금액보다도 훨씬 더 많은 웃돈을 얹어서 말이지요.

한번은 제가 너무 비싸다면서 조금 깎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요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택시 기사 형제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손님,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십시오. 제가 인천에 가면 빈 택시로 돌아와야 하는데 미터기 액수대로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따라서 미터기 요금의 두 배를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요. 그런데 그보다도 적게 받는 것인데 뭐가 비싸다고 합니까?”

이 택시를 타지 못하면 집에 갈 수 없다는 생각에 그냥 타고서 집에 오기는 했지만, 오는 내내 기분이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과연 두 배의 요금을 내는 것이 상식적으로 맞는 것일까요? 어차피 손님이 없어서 오랫동안 서 있는 것보다는, 이렇게 먼 거리를 갔다 오는 것이 훨씬 이득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상식을 내걸면서 이야기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생각하는 상식이 어쩌면 나만 주장하고 있는 억지가 아니었을까요? 이러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어떤 농부가 여우를 잡았습니다. 이 여우는 그 동안 농부의 닭장을 수시로 습격해 닭들을 해쳤던 못된 여우였지요. 농부는 여우를 혼내주기로 결심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혼내주는 것이 자기가 그동안 겪은 괴로움을 생각했을 때 상식적으로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너도 고생 좀 해봐라.’라는 마음으로, 올리브기름을 적신 베 조각을 여우의 꼬리에 매달고 헝겊에 불을 질렀지요. 그런데 마침 그때는 수확기였습니다. 꽁무니에 매달아 놓은 헝겊 조각에 불이 붙자 놀란 여우는 보리밭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다가 순식간에 보리에 옮겨 붙어 보리밭을 몽땅 태워버리고 말았습니다.

복수를 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결국 손해는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으로, 그는 지극히 비상식적인 행동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상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진리가 중요합니다. 더군다나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얼마나 좋은 것을 많이 주십니까? 그런데도 우리들은 스스로의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비상식적인 행동들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착한 목자’를 자처하시면서, 우리들을 위해 당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데려와야 한다면서 끝까지 우리를 지켜주실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사랑 가득하신 주님을 자신의 삶에서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주님께서 세우신 우리 안으로 들어가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우리 안에 쉽게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집착과 욕심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피할 수 없는 것은 포옹해 주어야 한다(셰익스피어).




강아지 발견


'별이'를 보낸 자리에 새롭게 온 강아지
 
지난 토요일, 혼배미사를 위해 답동성당으로 들어가는데 제의방 문 옆에 강아지 한 마리가 묶여 있습니다. 너무나도 귀엽습니다. 전에 있었던 강아지는 사람이 너무 좋아 달려든다고 다른 곳으로 보냈는데, 이 강아지는 너무나 작아서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줄에 묶여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참 안 좋았습니다.

‘너는 어렸을 때부터 자유를 구속받는구나.’

묶어놓지 않으면 혹시라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하긴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신고를 하는 세상이라, 이렇게 하지 않으면 또 다른 곳으로 가야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면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넓은 세상에 자유롭게 돌아다닐 때가 없다는 것이…….

그러나 이곳에 있는 것이 강아지에게 불행일까요? 사실은 저만의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수시로 산책을 시켜주는 많은 신부님들과 수녀님이 계시고, 또한 맛있는 것들을 가져다주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단지 하루 중 얼마를 이렇게 묶여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섣부르게 판단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판단하기에 앞서 내가 더 사랑해줘야겠다는 생각을, 그리고 내 생각을 줄이고 대신 하느님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긍정적인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comme au premier j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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