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믿지 않는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너희는 내 양이 아니다.”
오늘 주님께서 당신을 둘러싸고
당신의 정체를 알고자
조바심하는 사람들에게 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저를 가슴 철렁하게 합니다.
“너도 내 양이 아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입니다.
예루살렘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무척 알고 싶어 합니다.
이에 대해 주님께서는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믿지 않는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고 답하십니다.
당신이 하신 일들이 당신이 누구신지 말해주는데도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당신 양이 아니라십니다.
이어서 그러면 당신의 양들은
어떤지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아, 주님의 양들은 알아듣습니다.
그러니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양도 있고
들으면 알아듣는 양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군요.
예루살렘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이 낯섭니다.
그들이 오랫동안 들어왔던 말들은 다른 말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이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 들어오지 않습니다.
당연히 그 말씀을 듣고
예수님 존재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마리아야!”하는 소리만 듣고
즉시 예수님을 알아보고 “랍부니!”하지 않았던가요?
그러니 알아듣고, 알아보는 것은
달려 있는 귀와 떠 있는 눈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DNA처럼 깊숙이 박혀있는
내면의 귀와 눈입니다.
그것은 거듭거듭 듣고 들어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고 축적되어 있는
그 사랑의 말씀에 길들여진
내면의 귀와 내면의 눈입니다.
아무리 이 소리, 저 소리 많아도
내 귀에 꽂이는 소리,
내가 알아듣는 소리는 따로 있습니다.
주님의 양은 또한 주님을 따라갑니다.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십니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양들은 목소리를 듣고 목자를 알아보고
목자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유혹자 많아도
그리고 이것저것 아무리 호기심 많아도
결국 따라가는 것은 목자입니다.
수련 받을 때 수련소에서 산양을 키웠습니다.
제가 동물 담당을 할 때 어미가 새끼를 낳다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미 대신 데리고 자고 젖을 먹이고 하였더니
저를 어미처럼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이 양은 제가 가는 곳을 졸졸 따라다니고,
제가 동물 소임을 끝냈을 때도 제가 농장에 나가면
즉시 알아보고 저를 졸졸 따라다닙니다.
그러니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진정한 목자는 자기 양을 잘 알고
양은 자기 목자만을 따릅니다.
주님은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구원 의지와 사랑이 흠뻑 배어있고
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말씀입니다.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