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말씀의초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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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1-05-19 | 조회수348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2011 년 5월19일 (백)부활제4주간 목요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초대⊙
바오로 일행이 안식일 회당에서 설교를 한다. 바오로는 회중들에게 구약의 역사를 말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셨던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내 주셨음을 설명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난 다음 제자들도 당신처럼 종의 모습으로 남을 섬기면 행복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내셨습니다.>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 15 율법과 예언서 봉독이 끝나자 회당장들이 그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형제들이여, 백성을 격려할 말씀이 있으면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께서는 우리 조상들을 선택하시고,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살이할 때에 그들을 큰 백성으로 키워 주셨으며, 권능의 팔로 그들을 거기에서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18 그리고 약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그들의 소행을 참아 주시고, 19 가나안 땅에서 일곱 민족을 멸하시어 그 땅을 그들의 상속 재산으로 주셨는데, 20 그때까지 약 사백오십 년이 걸렸습니다. 21 그다음에 그들이 임금을 요구하자, 하느님께서는 벤야민 지파 사람으로서 키스의 아들인 사울을 그들에게 사십 년 동안 임금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22 그러고 나서 그를 물리치시고 그들에게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24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25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시편 89(88),2-3.21-22.25와 27(◎ 2ㄱ 참조) (또는 ◎ 알렐루야.) 제 입은 당신의 진실을 대대로 전하오리다. 제 가 아뢰나이다. “주님은 자애를 영원히 세우시고, 진실을 하늘에 굳히셨나이다.” ◎ 주님, 당신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내 손이 그를 붙잡아 주고, 내 팔도 그를 굳세게 하리라.” ◎ 주님, 당신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내 이름으로 그의 뿔이 높이 들리리라. 그는 나를 부르리라. ‘당신은 저의 아버지, 저의 하느님, 제 구원의 바위.’” ◎ 주님, 당신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복음환호송⊙ 묵시 1,5ㄱㄷ 참조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피로 우리 죄를 씻어 주셨네.
⊙복음⊙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17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내가 뽑은 이들을 나는 안다. 그러나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 19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미리 너희에게 말해 둔다.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나임을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묵상⊙
요즘은 서비스 업종의 직원들이 고객을 섬기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백화점, 상가, 식당, 주유소 등 어디를 가나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고객들에게 머리를 숙이며 섬기는 자세를 합니다. 사람을 섬기는 사회의 이런 분위기는 합당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해관계가 없는 관계에서도 이렇게 섬기는 분위기가 있는가 물으면 씁쓸해집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가 ‘섬김의 문화’라기보다는 ‘군림의 문화’를 역설적으로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 마음 안에 있는 군림하고 싶은 심리를 상업적 전략으로 역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상업적으로 지나치게 고객을 섬겨야 살 수 있는 문화라면, 그 이면에는 그만큼 우리 사회는 은연중에 군림하고자 하는 ‘천박한 욕구’가 지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감을 돈으로 사고, 허영심으로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지요. 사실은 양쪽 다 돈이 주는 위력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최후 만찬 때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이어지는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참된 행복은 우리보다 못한 처지의 약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섬기는 데 있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는 살면서 돈과 힘을 섬기며, ‘비굴한 만족’을 추구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약한 이들을 섬기고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살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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