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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쉽게 말하면 - 판공성사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1-05-20 조회수1,491 추천수4 반대(0) 신고
<판공성사>

 

자주 받는 질문 중에서 판공성사에 관한 것이 있습니다.

(물론 고해성사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지요.)

 

1) 해마다 판공성사를 볼 때가 되면

지난 번 고백했던 그대로 다시 고백하고 있음을 깨닫는다는 것.

 

재작년에 했던 고백과 작년에 했던 고백이 올해와 다르지 않고,

올해 판공 때 고백한 내용을

아마도 분명히 내년에도 또 고백하게 될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사나? 라고 한탄할 때도 있고,

판공성사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

 

2) 고해성사를 볼 마음이 전혀 없는데,

(죄가 있든지 없든지 하여간에)

판공 기간에는 모든 신자들이 의무적으로 고해성사를 보아야 한다니까

어쩔 수 없이 고해실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기는 하지만,

이렇게 억지로 고해성사를 보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라는 질문.

 

3) 어떤 죄를 지은 것이 있어서 고해성사를 보고

보속까지 정성스럽게 다 했는데,

금방 판공성사 시기가 되어서 또 고해성사를 보라고 하니

딱히 고백할 내용도 없고,

그렇다고 얼마 전에 고백한 내용을 또 고백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그렇다고 고백할 내용이 없다고 하면 혼날 것 같기도 하고.

 

4) 부활절 전과 성탄절 전에는 의무적으로 고해성사를 보게 되니까

일부러 따로 개인적으로 고해성사를 볼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특별히 죄를 짓고 사는 것도 아닌데...

그러니 그냥 살던 대로 살다가 판공성사만 잘 보면 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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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전과 성탄절 전에 의무적으로 보는 고해성사를 판공성사라고 부릅니다.

 

제 경험으로는

상당히 많은 신자들이 판공성사만 보고 평소에는 거의 고해성사를 안 봅니다.

그런 신자들을 위해서라도 판공성사 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든 실제로 많은 신자들이 판공성사를 몹시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리고 신부님들에게도 판공성사가 가장 힘든 일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하루에 천 명 이상 고해성사를 준 적도 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하루에 천 명!

정말 몸살이 날 정도였지요.

어떤 신부님은 판공성사 끝나고 나면 링겔 꽂고 자리에 눕기도 합니다.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본당신부에게도 편하고 신자들에게도 편하다는 이유로

공동 고백을 시행하는 일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하겠습니다.

 

공동고백이란 모두 함께 참회 예절을 하고 나서 한 번에 그냥 싹,

고해성사를 본 것으로 하는 것을 말하는데,

물론 보속은 개인적으로 하고...

 

교회법 규정에는 고해성사의 다른 부분은 공동으로 하더라도

‘고백’만큼은 무조건 개인별로, 비밀 고백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공동 고백이나 공개 고백은 분명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건 유효, 무효를 떠나서 ‘불법’입니다.

 

답변)

 

1. 같은 죄를 계속 반복하고, 고백도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문제.

 

그래도 지치지 말고 고백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죄의 용서만 고해성사의 은총이 아니라

죄를 짓지 않을 힘을 주는 은총도 있습니다.

 

고해성사를 흔히 목욕으로 비유하는데,

목욕을 한 번 했다고 평생 안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같은 내용의 고백을 자꾸 반복하게 되더라도 고백해야 합니다.

습관적인 죄라고 해도 고백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습관을 고칠 때가 올 것입니다.

 

정말 많은 신자들이 해마다 같은 내용의 고백으로 판공성사를 보고 있습니다.

‘나만 그러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2. 고해성사를 볼 마음이 없는데 판공성사 시기이니까 억지로 보라고 하는 경우.

 

물론 마음이 생길 때 보면 좋겠지요.

그러나 교회 법규나 행정 업무를 생각한다면 마음대로 하는 건 곤란하지요.

 

그리고 판공성사라는 것이 단 하루에 끝나는 일은 없으니까

자기가 마음이 생길 때 고해성사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며칠을 기다려도 여전히 고백할 마음이 안 생긴다면?

글쎄요.

밥을 먹기 싫어도 억지로 먹다보면 먹게 되는 것처럼

일단 고해실에 들어가면 다 되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들이 생기고,

해야 할 일이라면 싫은 마음을 누르는 것도 신앙입니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싫은 일은 안 한다면

그건 신앙생활이 아니라 취미생활이 되고 말 것입니다.

 

3. 고해성사를 본지 얼마 안 되어서 특별히 판공 때 고백할 내용이 없다면

그냥 그렇다고 고해사제에게 이야기하면 됩니다.

 

아니면 고해실에 들어가기 전에 그런 이유를 먼저 말해도 되고.

 

판공성사란 무조건 고해성사를 보라는 제도가 아니라

고해성사를 안 보았다면 보라는 제도입니다.

 

평소에 늘 고해성사를 잘 보는 신자라면

진짜로 판공 때 고백할 내용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 사정을 본당신부님께 말씀드리면 판공성사 본 것으로 인정할 것입니다.

 

4. 판공성사 제도가 있으니까 평소에 고해성사를 보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사실 평소에 고해성사를 안 보는 신자들 때문에 판공제도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덜 성실한 신자들 때문에 성실한 신자들에게 부담을 주는 셈입니다.

 

옛날에 목욕탕 시설이 형편없었던 시절에

설날이나 추석 전날만 되면 대중목욕탕이 붐볐습니다.

(그날만 목욕을 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만일에 설날 전에 목욕하면 되니까 지금은 목욕 안 해도 된다고 말하면?

그냥 웃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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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판공성사 때만 되면 늘 듣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판공성사라고 해서 고해실에 들어오긴 했는데,

특별히 죄를 지은 것도 없고, 고백할 것도 없다는 것.

일 년 만에 고해성사를 본다면서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 년 만에 고해성사를 보는데 그 사이에 죄를 지은 것이 전혀 없다고???

 

그 말이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면,

그 사람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입니다.

아니면 대단한 성인 성녀입니다.

단언하건대 인간이 일 년 동안 완벽하게 죄를 안 짓고 살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게 가능한 사람이 있긴 있습니다.

아주 어린 갓난아기,

또는 어른이라 하더라도 정신 연령이 어린 아기 수준인 사람.

또는 완전히 제 정신이 아닌 사람.

아니면 사람이 아니거나.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성인 성녀들이

우리보다 더 자주 고해성사를 보았습니다.

죄가 없어서 성인 성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대로 회개했기 때문에 성인 성녀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입으로 죄 없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죄입니다.

 

우리는 행동으로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생각으로도, 말로도 죄를 짓고,

해야 할 일들, 특히 사랑 실천 등을 제대로 하지 않는 죄들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스스로 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과 성모님 두 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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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말로 생각나는 죄가 없다면?

생각이 안 난다고 말하면 되지만...

 

그렇더라도 평소에 무관심했던 일들, 정성과 사랑이 부족했던 일들,

그런 일들에 대해 충분히 반성하는 시간은 가져야 할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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