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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를 사랑하는 사람'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11-05-23 조회수504 추천수6 반대(0) 신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 (요한 14, 21-26)
    -유광수 신부-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오늘 복음을 보면
"나를 사랑하는 사람""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으로 구분하신다."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세 번이나 말씀하시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한번 언급하신다.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만큼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강요하지는 않으시고 다만 당신의 뜻을 밝히시고 알려주시기만 하신다.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맡기셨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님의 계명을 내가 지키는가 아닌가? 가 그 기준이다.

예수님의 계명을 받아 지키는 사람이라고 할 때 사용한 동사는 희랍어로 "Tereo"(떼레오)라는 단어이다. "떼레오"라는 말은 "조심스럽게 돌보다, 보살피다, 지키다, 감시하다, 간직하다, 붙들다, 주시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내 계명을 지키는 이"는 예수님의 계명(말씀)을 조심스럽게 돌보고, 정성스럽게 보살피고, 누가 빼앗가지 않도록 정성스럽게 지키고 감시하고 붙드는 사람이다. 마치 귀한 손님이 오셨을 때 기쁜 마음으로 반갑게 맞이하듯이 그런 마음으로 예수님의 계명(말씀)을 자기 마음 안에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마치 애인의 글을 받았을 때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대하듯이 그런 마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또 누가 나의 보물을 빼앗가지 않도록 지키고 감시하듯이 나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에게 있어서 주님의 계명(말씀)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이며 그것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에게 있어서 주님의 계명은
"당신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 나의 길을 비추는 빛이오이다."(시편 118, 105)라고 했듯이 등불이요, 빛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삶은 전적으로 주님의 계명에 달려 있다. 주님의 계명을 실천하기 위해 존재하고, 생활하는 사람이다. 모든 것은 다 주님의 계명에 의해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항상 자신의 삶을 반성한다. 나의 삶이 주님의 계명을 따라서 생활했는가 아닌가를 점검하고 충실한 삶이었으며 주님께 감사드리고 충실하지 못한 삶이 발견되면 주님께 용서를 청하고 교정하는 사람이다. 주님의 마음에 꼭 드는 말을 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고 판단하면서 생활하니 주님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께 사랑 받을 일만 하고 사는데 사랑하지 않을 아버지가 어디 있겠는가? 아버지도 사랑하고 예수님도 사랑하고 또 자신을 드러내 보이실 것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뜻이나 계획을 갖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계명에 따라 생활하는 사람으로서 성령이 이끄시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성령이 이끄시는 삶을 살기 때문에 성령께서 그 때 그 때마다 주님의 계명을 기억나게 해 주신다. 즉 무엇을 말하고 행동할 때 주님의 계명을 먼저 생각하고 그 상황에 알 맞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서 말하고 행동한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계명을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실천하려는 생활에서 그리고 주님의 계명을 생활의 등불, 빛으로 삼고 생활하는 데에서 가능한 것이다.

반대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말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주님의 말씀에 대해 중요성을 두지 않는 사람이며, 무관심한 사람이며, 주님의 말씀과는 아무 관계없이 생활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의 말과 행동은 주님의 말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에 준해서 말하고 행동한다. 즉 삶의 기준이 말씀이 아니라 자기 생각이다. 주님과 관계를 맺지 않는데 어떻게 주님을 사랑할 수 있겠으며 또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겠는가? 너는 너, 나는 나대로의 삶을 계속해서 살 때 점 점 더 주님과 멀어지고 주님과는 아무 관계없이 자기 멋대로 생활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 때에는 가볍게 들릴런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 차이는 엄청나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점점 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것이고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점 점 더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다. 우리가 살아온 만큼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모습이 차이가 날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킨 사람은 예수님을 점 점 더 알게 될 것이고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 그 계명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점 점 더 예수님을 모르게 될 것이고사랑에 굶주릴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함께 생활할 때 잘 드러난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할 때 또는 대화를 할 때는 물 흐르듯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흐르고 일이 잘 된다. 말이 통하고 대화가 이루어 진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 마음이 일치되고 일을 하면서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생활할 때에는 사사건건 문제가 일어나고 문제꺼리가 되고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를 않는다. 그래서 말하는 것이 힘들고 일하는 것이 힘들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기 때문에 일치를 이루고 알아듣지만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각자 자기 생각과 의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치가 안되고 자기 중심으로 일을 하고 말을 하기 때문에 상처를 주게 된다. 그래서 성 바오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사실 우리는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보다는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과 생활하게 될 때가 많이 있다. 그래서 서로 일치하기가 힘들고 서로 말이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짊어져야할 십자가이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에서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치지 않고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사람에게 의존한 삶이 아니라 예수님의 계명에 바탕을 두고 그 계명을 실천하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한테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한테 사랑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바오로 사도가 "우리는 아무리 짓눌려도 찌부려지지 않고 절망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으며 궁지에 몰려도 빠져나갈 길이 있으며 맞아 넘어져도 죽지 않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음을 몸으로 경험하고 있지만 결국 드러나는 것은 예순의 생명이 우리 몸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언제나 예수를 위해서 죽음의 위험을 겪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죽을 몸에 예수의 생명이 살아 있음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코후 4, 8-11)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나는 오늘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 아니면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살고 그렇게 해서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은혜로운 하루가 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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