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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05-27 조회수913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5월 27일 부활 제5주간 금요일
 
 
 
This is my commandment:

love one another as I love you.

(Jn.15.12)

 
 
제1독서 사도행전 15,22-31
복음 요한 15,12-17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치고 자신의 외모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나는 내 외모에 신경 쓰지 않아.”라고 말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외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을 보면, 많은 이들이 외모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 외모라는 것은 성형수술을 통해 확 바뀌어 질 수도 있지만, 외부환경을 통해서 더 많이 바뀌어 진다고 하지요. 이를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낸 부부의 얼굴이 서로 닮아가는 경우를 통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친척끼리 결혼한 것도 아닌데, 왜 얼굴이 서로 닮아갈까요?

이는 여러 가지 일들을 같이 겪으면서 자주 짓던 표정이 얼굴에 영향을 주는 것이랍니다. 또한 함께 살다보면 마치 거울을 보듯 서로의 표정을 무의식적으로 다소간 흉내 내게 되어 있다고 하지요.

결국 외부의 모습에 따라, 즉 내가 어떤 얼굴을 보면서 지내느냐에 따라서 내 얼굴도 바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인상은 30퍼센트는 타고나고, 70퍼센트는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만들어진다고 하지요. 나이가 들수록 내면이 드러나기 때문에 어떻게 살았는지가 더욱 많은 영향을 줍니다.

그렇다면 내 얼굴이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비춰지길 원하십니까? 짜증내는 모습, 미움으로 가득한 모습, 증오와 원망의 모습? 아니지요. 그 누구도 그런 얼굴로 살아가길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거울을 볼 때면 인상을 절대 쓰지 않지요. 인상 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내 모습을 웃는 모습, 행복한 모습, 사랑 가득한 모습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런 얼굴을 많이 보고 많이 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사람 모두가 그런 모습을 내게 보여주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렇다고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먼저 그런 모습을 보이면 상대방도 그런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한다.’라는 말처럼, 내가 먼저 웃으면 상대방도 웃게 되어 스스로 웃는 모습을 보면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모두 예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우리에게 남기신 것이 아닐까요?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서로의 사랑하는 모습을 통해서 외모조차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아름답기를 원하신다면, 이제는 자신의 내면을 먼저 신경 써야 할 것입니다. 나를 통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으며, 그 모습을 보는 나도 결국은 아름답게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행복을 미래에서만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것이 지금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모른다(파스칼).



키보드

이렇게 찍으니 키보드도 멋있네요.

컴퓨터의 자판을 보면 ‘QWERTY’ 순서로 배열되어 있습니다(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면 지금 자편을 보세요). 왜 이러한 배열로 컴퓨터 자판을 만들었을까요? 오히려 영어 알파벳 순자인 ‘ABCDEF’의 순서로 배열하면 나중에 자판을 익히는데도 훨씬 쉽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타자기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초기의 타자기는 연달아 나오는 빈도가 높은 철자를 칠 때마다 엉켜서 고장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래서 1868년 미국의 발명가 크리스토퍼 숄스가 빈도수가 높은 철자들을 반대 방향으로 떼어놓은 자판 배열을 만들어 특허를 출원했는데, 이것이 바로 ‘QWERTY’ 배열입니다.

그런데 문득 지금은 왜 자판의 구성을 바꾸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컴퓨터를 쓰기 때문에 많은 쓰는 철자가 엉킬 염려가 전혀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익숙해져 있는 것을 바꿀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QWERTY’ 배열을 지키고 있는 것이지요.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 힘들다고 이야기합니다. 기도하는 것도 힘들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도 힘들고, 그래서 괜히 주님을 믿었다고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요? 익숙해져서 ‘QWERTY’ 배열의 자판기만을 고집하는 우리들처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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