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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나의 양심도 성령 안에서 증언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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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그것은 커다란 슬픔과 끊임없는 아픔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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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설명:
성경에서 축복과 저주는 세상에서 말하는 축복과 저주와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잘 묵상을 해야 하는데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하니까
아브라함과 사라는 사람의 생각으로 사라는 이미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사라의 몸종인 하갈에서 이스마엘을 낳아 자식을 보는 것이
축복이라고 인간적인 생각을 했지만
하느님께서는 사라에게서 이사악을 낳아 언약의 자녀로
이어지는 것이 영적인 축복 받는 일이라고 말씀하시고
오늘날에도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들이
말씀의 자녀들로 태어나는 것이 영적으로 축복을 받는 것이며
저주를 받는 것은 하느님 말씀을 거부하고
육의 자녀로만 태어나 사는 것이 구원 받지 못하고
천국에 못 들어가기 때문에 저주 받는 것이기 때문에
말씀을 사랑하여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며 말씀 안에서 살아갈 때
말씀의 능력으로 우리들 안에 아가페 사랑이 오며
우리 안에 사랑의 하느님이 거처할 때
성령이 거처하는 거룩한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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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입니다(광야교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 영광, 여러 계약, 율법, 예배, 여러 약속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
5 |
그들은 저 조상들의 후손이며, 그리스도께서도 육으로는 바로 그들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는 하느님으로서 영원히 찬미받으실 분이십니다. 아멘. |
하느님의 이스라엘 선택
영의 자녀와 육의 자녀로 갈라 놓는 것이 심판인데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을 받아 들여 말씀이 이루어진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자녀들이며 영의 자녀들이며
아담을 창조하여 원죄 짓기 전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며
말씀하고 관계를 맺을 때 아가페 사랑이 오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말씀을 선포하셨을 때
받아 들인 아브라함은 예수님의 예표인 이사악이 언약의
자녀이며 말씀의 자녀이고 이사악이 에사우와 야곱을 낳았지만
하느님께서 야곱을 선택하여 야곱을 통하여 열두 지파가 탄생하지만
열두 지파 중 유다지파를 통하여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오셔서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안에 오신 예수님을 찬미 하며
우리들도 말씀하고 관계를 맺을 때
생명의 책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 가게 되는데
요한복음 1,12에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신다 하니까 하느님 뜻을 모르고
하갈에서 이스마엘을 낳았지만 사라에게서 낳은 이사악을 선택했으며
이사악도 에사오를 야곱보다 더 사랑했지만
하느님께서는 레베카를 통하여 형(이스마엘)이
동생(야곱)을 섬기리라는 예언 말씀을 받아 레베카가 야곱을 장자로
세우기 위하여 거짓으로 짐승을 잡아 이사악에 바치고
이사악으로부터 하느님의 축복을 야곱이 가로챈
예화를 통하여
하느님 말씀의 뜻을 모르면 잘못을 범하는 것처럼
오늘날 우리들도 성경 말씀 안에 있는 하느님 뜻을 모르고
그릇된 열정으로 일할 때는 잘못을 범할 수 있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공부하고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되새기면서 신앙생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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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그렇다고 하느님의 말씀이 허사로 돌아갔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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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후손(씨=말씀)이라고 다 그의 자녀가 아닙니다.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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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이는 육의 자녀가 곧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고, 약속의 자녀라야 그분의 후손으로 여겨진다는 뜻입니다. |
9 |
약속이라는 것은, “이맘때에 내가 다시 올 터인데 그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하신 말씀입니다. (창세기18,10) |
10 |
그뿐만 아니라, 레베카가 한 남자 곧 우리 조상 이사악에게서 잉태하였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창세기25,21) |
11 |
두 아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들이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하느님께서는 당신 선택의 뜻을 지속시키시려고, |
12 |
또 그것이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부르시는 당신께 달려 있음을 드러내시려고,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 하고 레베카에게 말씀하셨습니다.(창세기25,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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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나는 야곱을 사랑하고 에사우를 미워하였다.”(말라기1,~3) |
14 |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하느님 쪽이 불의하시다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
15 |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가 자비를 베풀려는 이에게 자비를 베풀고 동정을 베풀려는 이에게 동정을 베푼다.”
(탈출기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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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에 달려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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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성경도 파라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 이렇게 하려고 내가 너를 일으켜 세웠다. 곧 너에게서 내 힘을 보이고, 온 세상에 내 이름을 떨치게 하려는 것이다.”(탈출기9,16) |
18 |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어떤 사람에게는 자비를 베푸시고,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어떤 사람은 완고하게 만드십니다. |
하느님의 진노와 자비
율법하에 있을 때는 심판을 내리시는 무서운 하느님으로 보이지만
생명의 성령의 법이며 신약의 은혜시대에 새 계명인 아가페사랑이
계명으로 볼 때는 하느님은 자비와 사랑의 하느님이시며
신약시대에 와서도 성경 말씀을 문자로 보고 사람의 의로
지킬려고 하면 지킬 수가 없기 때문에
정죄가 되며 심판을 주시는 하느님으로 보지만
신약의 은총시대에 사랑의 눈으로 성경말씀을
읽고 보고 느끼고 체험하면서 살아갈 때는
창세기부터 묵시록까지의
모든 성경의 말씀이 자비와 사랑의 편지로 보이며
우리들의 결점을 지적해 주었을때도
사랑의 눈으로 볼 때는 즉시 고치고 결점을 말해주신분께
감사를 드리며 변명을 하지 않는 것이
사랑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 자세이며 사도들과
교부들 및 성인들의 삶을 본 받아 예수님처럼
사랑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느님께 자비를 구합시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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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
이제 그대는,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왜 사람을 여전히 책망하십니까? 사실 누가 그분의 뜻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을 것입니다. |
20 |
아, 인간이여! 하느님께 말대답을 하는 그대는 정녕 누구인가? 작품이 제작자에게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소?”(이사야29,16)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
21 |
또는, 옹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한 덩이는 귀한 데 쓰는 그릇(2코린토5,1)으로, 한 덩이는 천한 데 쓰는 그릇으로 만들 권한이 없습니까? (예레미야18,6) |
22 |
하느님께서 당신의 진노를 보이시고 당신의 힘을 알리기를 원하시면서도, 멸망하게 되어 있는 진노의 그릇들을 큰 은혜로 참아 주셨다면,(잠언16,4) |
23 |
그리고 영광을 받도록 미리 마련하신 자비의 그릇들에게 당신의 풍성한 영광을 알리려고 그리하셨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렵니까? |
24 |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유다인 가운데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도 불러 주셨습니다. |
25 |
이는 바로 호세아서에서 말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나는 내 백성이 아닌 자들을 ‘내 백성’이라 부르고 사랑받지 못한 여인을 ‘사랑받는 여인’이라 부르리라.(호세아2,25) |
26 |
그들에게 ‘너희는 나의 백성이 아니다.’ 하던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리라.”(마태오5,9) |
27 |
그리고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두고 이렇게 외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바다의 모래 같다 하여도 남은 자들만 구원을 받을 것이다. |
28 |
주님께서는 말씀을 온전히 또 조속히 세상에 실현시키실 것이다.”
(이사야10,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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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
이는 또 이사야가 예언한 그대로입니다. “만군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후손을 남겨 주지 않으셨으면 우리는 소돔처럼 되고 고모라같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이사야1,9) |
이스라엘의 잘못된 열성
율법은 '노모스' 라고 하는데
이 '노모스'란 말은 '네모 '즉 소경이란 뜻이며
이 '네모'에서' 미스테리온' 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 '미스테리온' 은 신비란 말이며
율법에 있으면 눈이 어두워 소경이 되고
성경 말씀이 신비로 남아 깨닫지 못하게 되어
열성을 다 하지만 성경 말씀을 모르고 하느님 뜻을 깨닫지
못하여 그릇된 열성으로 일하기 때문에
하늘나라를 여는데 믿음으로 시작하여 신앙생활 하면서
믿음의 열매인 사랑으로 살아갈 때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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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의로움을 추구하지 않던 다른 민족들이 의로움을, 믿음을 바탕으로 의로움을 얻은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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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스라엘은 의로움의 율법을 추구하였지만 그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설명:
옛 계명인 율법을 추구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율법으로는 하느님의
의로움에 들어갈 수 없지만
성령의 법인 사랑의 계명으로 하느님 의에 들어가야 하는데
눈이 어두워 영적인 소경들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메시아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 눈이 없기 때문에
율법의 저주하에 놓이게 되었으나 고맙게도 생명의 성령의
법인 레마말씀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구원하러 오셨다고 계시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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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것을 믿음으로 찾지 않고 행위로 찾을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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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보라, 내가 시온에다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을, 부딪쳐 쓰러지게 하는 바위를 놓는다. 그를 믿는 이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설명:
돌도 의인화해서 설명하는데
일반 돌은 율법을 상징하며
산돌은 예수 그리스도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1베드로 2,4)
바위는 '히브리어'로 '에벤르아으' 인데
아버지 아들 즉
성부 성자 성령인 삼위일체 하느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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