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목요일 (희생과 봉사?) - 도반 홍성남 마태오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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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유미 | 작성일2011-06-01 | 조회수519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성목요일날 주님께서는 죽임을 당하시기 직전에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십니다. 성찬례를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겠다고 자청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1. 제자들의 발이 더러워서 밥맛이 나지 않으셔서 2. 새로 깐 카페트가 더러워질까봐 3. 발 씻어주고 용돈 버실려고 4. 그냥
5. 이 중에는 답이 없음 오늘은 주님께서 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는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남의 발을 씻어준다는 것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요. 혹 여러분 중에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면서 사는 분 계십니까? 배우자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발을 매일 씻어주는 분 계십니까? 제가 아는 분 중에 딱 한 분이 배우자의 발을 씻어준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이십년 전 보좌신부때 일인데 남편이 너무나 믿음직하고 사랑스러워서 신혼초부터 발을 씻어주었다는 자매님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지금도 집에 들어오면 양말을 벗고 발을 씻어주길 기다린다고 합니다. 이제는 아들들까지도 양말을 벗고 아버지 옆에 같이 앉아 있다고 하는 자매님의 투정이 그냥 투정으로 들리던 그런 분이 딱 한 분 있었습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마도 많은 가정들이 그렇게 살겠지 생각했는데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이야기더군요.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해도 발을 씻어주면서까지 사랑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준다는 것은 내가 그 사람의 하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주님 당대에는 더한 것이었습니다. 주님 당대의 사회적 관습으로는 다른 사람의 발을 씻는 것은 종들이나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이 얼마나 황겁하였겠습니까? 그런데도 주님은 만류하는 제자들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한 사람씩 발을 다 씻어주십니다. 주님이 이렇게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은 당신이 세우고자 하는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무언의 행동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럼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주님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발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면 이해될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제게 손을 보여 주세요. 네. 양말을 벗고 발을 보여주세요. 왜 안하십니까? 남들에게 발을 보여주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왠지 발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은 찜찜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지요. 발은 왠지 남들에게 공개적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신체부위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에는 이 발과 같이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치부라고 부르거나 약점, 결점 등등의 이름으로 부릅니다. 사람이 가진 이런 결함들 중에는 노력해서 고쳐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본인도 괴로워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은 바로 이것, 사람들의 치부를 건드리지 말라는 무언의 당부였던 것입니다.
일반인들이 가끔 교회가 사회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합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수많은 신학자들이 답변하였습니다만 가장 단순한 답은 서로 헐뜯지 않는 공동체, 다른 사람의 치부를 감싸주는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신앙인들이 하는 희생이란 남의 말을 하고 싶은 욕구를 참고 절제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순시기... 희생봉사를 하라고 합니다. 경험에 비추어보건대 가장 큰 희생은 다른 사람의 결점을 보고서도 험담하지 않고 입을 봉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오죽하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친 이발사 이야기가 나왔겠습니까. 남의 치부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희생입니다.
어떤 신부가 죽어서 천당에 갔습니다. 이 신부는 살아서 여러 가지 봉사활동도 하고 사회적으로도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분명히 천당에서 상당한 지위를 보장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다른 신부들을 면접하는 것을 보니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신부들의 이력서를 보거나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입냄새를 맡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입냄새가 아주 심한 신부들의 냄새에 얼굴을 찡그리시면서도 천당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주시는데 입냄새가 별로 나지 않는 신부들에게는 낮은 자리를 주시더랍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회합석상에서 늘 꾸어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있기만 하고 강론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어리버리하게 살던 별볼일 없어보이던 신부가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이 신부는 이건 뭐가 잘못된 거야 하고는 자기 차례가 되면 항의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자기 차례가 되었는데 하느님께서 이 사람의 입냄새를 맡으시더니 ‘낮은 곳’하고 발령을 내셨습니다. 이 신부는 즉각 항의했습니다. 혹 하느님께서 연세가 있으셔서 잘못 판단하신 것이 아닙니까?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하면서 자기 이력을 얘기하는데 하느님께서 다시 한 번 ‘낮은 곳’하시면서 말씀하시길, 입냄새가 심한 사람들은 남의 말을 절대로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 높은 곳으로 갔지만, 너는 일은 많이 하였는데 남의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입냄새가 전혀 나지 않으니 낮은 곳으로 가야 한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누구나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무엇인가를 한 가지 이상씩은 가지고 삽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 것은 숨기면서 남의 것은 자꾸만 건드리려고 하는 행동은 심리적으로 아주 병적인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나 하는 짓인 것입니다. 사순시기를 마무리하면서 다시 남의 말을 하고픈 유혹이 올라올 때 잘 참는 노력을 함께 하도록 해야겠습니다.
평화 신문 상담코너 '아 어쩌나'/ 평화 방송 '행복한 신앙' 책[벗어야 산다] 외 다수 상담 카페 도반 http://cafe.daum.net/withdoban 주일미사 강론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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