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베드로 사도의 처가살이? 의 묵상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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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1-06-02 | 조회수685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샬롬 샬롬"
필립보 베드로 안드레아 사도의 고향은 벳사이다(요한1,44)이고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은 카파르나움(마르1,29)에 있었습니다.
마르 1,29-31의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신 택스트를 묵상하고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시대적 배경과 왜 베드로 사도가 처가 살이를 한다고 묵상했는지 나누겠습니다.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요한21,15) 하시는 것으로 보아 아버지의 이름은 요한입니다.가정 형편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마르코 복음서를 통하여 유추해 보겠습니다.
당시에는 어린이와 여자는 존중 받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또한 성경의 메세지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음을 알려 드렸듯이 시몬의 장모의 열병은 진짜 육체적인 열병과 속병인 울화병 입니다. 왜 울화병이 났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후에 나누기로 하고 우선 처가살이의 배경에 대해서 나누어 보겠습니다.
회당에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신 후 ["그들은 회당에서 나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갔다.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마르1,29-30)] 예수님과 사람들은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여기에서는 울화병이 났다고 묵상한 내용입니다.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여자가 아프다고 해서 감히 남자들이 왔는데 도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은 시몬의 장모의 사회적 위치를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나라 왕들의 역사를 다룬 드라마를 보더라도 임금이 방문하면 아무리 아파도 일어나는 시늉은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시몬의 장모는 그냥 평범한 여인이 아닙니다.
아마도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고기잡이를 그만두고 떠났을 때 생계가 막막한 상태였다면 예수님이 부르시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에 과부와 고아는 살기가 무척 힘들었던 점을 감안하면 장모와 부인을 남겨두고 떠나도 고기 잡는데 치명적인 어려움은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왜? 노비든 머슴이든 아무튼 고기잡을 만한 사람이 있었다는 말이니까요. 아마도 부자였을 것이고 당시 여자가 사업을 일선에서 관리하고 지휘할 수 없는 사회적 배경으로 인하여 믿을 만한 친척 중에서 스카우트 해온 요즘식의 명예 사장 정도로 이해 됩니다. 장인은 돌아가셨고 딸이 하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합니다.
이제는 시몬의 장모가 왜 울화병이 났는지 나누어 보겠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눈에 들어 뽑힐 만큼 이스라엘의 해방을 염원했던 인물입니다. 마음속 품은 생각을 아시는 분께서 아무나 뽑으셨을리 없으니 말입니다.
원래 우리나라도 독립운동을 하셨던 독립투사들을 보면 가정을 충실히 돌보지 못 하셨습니다.이러한 관점에서 베드로 사도를 이해한다면 사도는 이세상 부귀영화에 목숨걸고 산 사람이 아니었기에 장모가 기대 했던만큼 고기잡아 부자되는데 정신을 팔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예수라는 사람을 만나더니 아예 그를 따라 다니며 고기는 잡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병이 난 것입니다.
반면 베드로의 부인은 어떤 인물이었는지 성경은 말하지 않으나 아마도 남편을 존경하고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고 따랐던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통 성경의 인물들은 문제가 있거나 아주 훌륭한 일을 했거나 하기에 소개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지금도 그렇지만 부인인 당사자는 가만히 있는데 장모가 나서서 휘두르는 경우는 장모의 끝발이 대단한 집안입니다.
고기도 잡지않고 독립운동 한다고 예수라는 사람과 어울려 다니는 사위가 뭐가 예뻐서 그들이 왔다고 일어나 환영 하겠습니까?
눈에 선합니다. 머리에 띠를 질끈매고 벽을 향해 돌아누운 장모의 모습이........
베드로와 안드레아는 스승님을 모시고 왔는 데 참으로 민망했을 것입니다. 아무 말도 못하는 데 사람들이 이 황당한 상황에 대해 예수님께 설명합니다."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마르1,30)
오늘은 여기까지하고 장모의 열병이 어떻게 치유되는지는 내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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