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지금 누리는 것이 -반영억라파엘신부-(요한 16,16-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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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 | 작성일2011-06-02 | 조회수443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2011년 6월 2일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너희는 근심에 잠길지라도 그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말씀의 초대 바오로는 코린토에서 아퀼라와 프리스킬라와 함께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고 회당에서 유다인과 그리스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며 말씀 전파에 전념한다. 그러나 그들이 반대하며 모독하는 말을 퍼붓자 옷의 먼지를 털고 바오로는 그곳을 떠난다. 옷의 먼지를 터는 행동은 그들과의 결별을 뜻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닥칠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일러 주신다. 제자들의 근심이 “조금 있으면” 기쁨으로 바뀔 것임을 전해 주시며 슬픔의 순간을 잘 견디도록 격려하신다(복음).
복음 묵상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탓입니다. 그들은 스승님께서 떠나신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전적으로 그분께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헤어짐은 일상사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체험하게 됩니다. 신앙생활도 결국은 ‘혼자’ 가는 길입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스승님께서는 비장한 말씀을 남기십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함께 계실 분으로만 믿고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알 수가 없군.” 그들은 이렇게 서로 수군거릴 뿐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아직은 현실이 아닙니다.
지금 누리는 것이 -반영억라파엘신부- 만남은 헤어짐을 전제합니다. 평생 이별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아무리 사랑하고 좋아한다 할지라도 때가 되면 이별을 감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사랑의 관계가 참되었는지가 드러나게 됩니다. 어떤 이는 잠시잠깐의 만남을 기뻐하고 어떤 이는 좀 더 오랜 만남을 기대하고 희망합니다. 기왕이면 떠날 때 떠나더라도 가슴에 남는 만남을 이뤄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울며 애통해 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요한16,20) 하고 말씀하시며 세상을 떠나 아버지 하느님께로 가게 됨을 제자들에게 거듭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권력자들은 십자가에 무참하게 처형된 예수를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결국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직접 겪은 후에야 그 말씀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사건을 통하여 근심이 기쁨으로 바뀔 것이라는 말씀을 체험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무엇을 안다고 하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인 것처럼 생각하고 편견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모든 것을 다 이해한 다음에 수용하겠다는 것도 꼭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스승의 가르침은 머리가 아니라 먼저 가슴으로 따르고 비로소 논리를 확인하게 됩니다. 지금 알아듣지 못해도 때가 되면 알게 됩니다. 그때 아는 것은 이미 있었던 진리를 확인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그때가 오기까지 제자들은 함께 해산의 진통을 겪어야 합니다. 봄에 씨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스승과의 깊은 신뢰를 쌓고 스승의 모든 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여야겠습니다. 스승이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때 참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스승은 많이 알아서 스승이 아니라 모든 것을 품을 수 있어서 스승입니다. 지금의 근심이 기쁨으로 바뀌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동행하여 주심을 믿고 여기서 기쁨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뜻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이순간만은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느끼며 오늘도 당신의 도구로 쓰임 받기를 희망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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