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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버지께 간다'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11-06-04 조회수451 추천수4 반대(0) 신고

아버지께 간다(요한 16, 23-28)

   -유광수 신부-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

 

                                 * * * * * * *

 

오늘 복음에서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당신이 어디에서 왔고 또 어디로 가시는 지를 분명히 알고 생활하셨다는 것을 말한다.

 

이 짧은 말씀 속에 예수님의 일생이 담겨져 있고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이 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은 곧 우리의 삶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당신 자신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들을 위해서 오셨고 아버지께 가신 것도 우리를 아버지께 데려가기 위해 가신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께로부터 왔다가 아버지께로 가는 것, 그것이 곧 우리 삶의 방향이어야 하고 목표이어야 한다. 그것은 알파요 오메가이시며 시작이요, 마침이신 예수님 안에서 걸을 때만이 그 길을 걸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매일 그냥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아버지께로 한 걸음씩 다가 가는 삶이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 자신을 완성시켜 나가야 한다. 완성되어져야 할 우리의 모습은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 48)라고 말씀하신 대로 아버지를 닮아 완전한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이다.
 
만물유도(萬物有道)라는 말이 있다. 즉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다 길이 있다."는 뜻이다. 어디에서 왔고 또 어디로 가야하는지 각자 그 길이 있다는 것이다.  길을 "道"라고 하고 그 길을 찾아 나서는 사람을 가르쳐 구도자(求道者)라고 한다. 또 그 길을 찾아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수도자(修道者)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런 훈련을 닦는 장소를 도장(道場)이라고 부른다. 이런 면에서 우리 모두는 길을 찾고 있는 구도자요,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완덕을 닦아야할 수도자이며, 이 세상은 도를 닦는 장소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찾아 나서지 않고 있다. 자신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또 생각해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은 어수선하고 혼란스럽다. 인간이 가야할 길을 가지 않기 때문이다. 각자 자기가 가야할 길을 간다면 이런 어수선함이 없을 것이다. 자동차가 많아도 각자 자기가 가야할 목적지를 향해 달리기 때문에 질서있게 움직이는 것이다. 질서가 무너지면 혼란이 온다. 우왕좌왕 한다.

 

오늘 날 우리 사회는 길을 잃어버렸다. 아니 길을 잃고 헤메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온갖 비리들이 저지러지고 폭력이 난무하고 대형사건들이 많이 일어난다. 길을 가지 않으면 충돌이 일어나고 사고가 나는 법이다.  "자아를 잃어버린 현대인"이라는 책이 오래 전에 나왔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자아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이런 인간에게 길을 찾아 주러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길이다."(요한 14, 6)이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내 인생의 기원과 목적지를 아는가? 
크리스챤은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다.

 

그 길은 좁은 길이다. 다른 사람들이 제시해준 길은 많이 있지만 아버지께 가는 길을 제시해주신 분은 오직 한 분 즉 예수님만이 제시해주셨기 때문에 단 하나의 길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좁은 길이다. 그렇지만 그 길을 우리는 가야 한다. 아버지께 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갈려고 하면 그마만큼 우리는 헤메일 것이며 아버지께 가는 길로 들어서는 시간이 늦어 질 것이다. 


1978년에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작가 첸타 마우리나가 8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저는 이 작가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책을 보니까 이 작가는 독자들에게 많은 감명을 주었던 사람이고, 특히 자신의 삶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 저리 배회하는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던 작가라고 한다. 이 작가는 장애인으로 태어나 삶의 처음부터 휠체어의 신세를 져야만 했고 장애자의 신세와 또 이 때문에 덤으로 겪는 사람들의 불친절과 차가운 시선을 그녀는 자신의 신앙으로 극복한 훌륭한 신앙인이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훌륭한 신앙으로 살았던 작가는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작은 책자를 펴냈다. 그 책의 제목은 <나의 뿌리는 하늘에 있다.>였다. 책의 제목에서 우리는 그녀의 철저한 신앙의 삶을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그녀는 자신의 고통스런 삶 전체를 하느님 안에서 이해하려고 했고, 자기 자신의 삶을 하늘에서 뿌리내리게 하여 성장시키려 했다.


"나의 뿌리는 하늘에 있다."는 이 말은 이 세상에 아직 살면서도 세상의 공기로 숨쉬지 아니하고, 세상의 공기와는 전혀 다른 공기로 숨쉬고 살아가는 모습을 가리킨다. 영원의 상태가 아니라 세상의 시간 안에 살면서도, 이 세상의 공기가 아닌, 하느님의 호흡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하늘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있으면서도 이 세상에 의해 살아가지 않고 하늘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이 하늘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사실 우리 삶이 위에서가 아니라면 우리는 어디에서 밝은 빛을 찾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낙담하여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하늘에서가 아니라면 우리는 그 무엇으로부터 그 어려운 시간을 견디어 낼 수 있겠는가? 삶이 온통 뒤죽박죽 되었을 경우 하느님의 사랑에서가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를 어디에서 되찾을 수 있겠는가?


첸타 마우리나가 말하는 "하늘에 자기 자신의 뿌리를 내리는 일"은 우리 안에 하나의 법칙을 상기시켜 준다. 그 법칙은 우리의 삶에 새겨져 있는 법칙이다. 즉 우리가 시선을 두는 곳을 향하여 우리는 살아가게 되어 있다는 법칙을 말한다.

아래를 자꾸만 바라보는 사람은 아래로 내려가게 되어 있고 위를 자꾸만 바라보는 사람은 그 위를 향하여 살아가게 되어 있다. 우리의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과 그 방향이 달라지는 법이다.


우리 신앙인의 스승이신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바라보자. 예수님께서 당신의 삶 가운데 항상 시선을 두셨던 곳은 하늘 즉 아버지이셨다.  열 두 제자를 뽑으실 때에 하늘을 향해 기도를 드리시고, 병자에게 도움을 베푸실 때에 하늘을 우러러 보셨고, 당신 수난에 직면하여 올리브 동산에서 하느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셨다. 예수님은 당신 삶의 모든 국면에서 항상 하늘에 시선을 두셨고, 그 하늘의 힘에 의해 살아가셨다.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의 힘으로 살지 아니하고 하늘의 힘으로 사셨던 것이다.


이런 예수님의 삶을 우리 자신에게도 적용시킨다면 우리 역시 하느님께 시선을 보다 분명하게 돌리면 돌릴수록 세상 만물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자신감이 넘쳐날 것이다. 하느님께 시선을 떼지 않는 사람은 세상 재화나 권력의 단맛에 넘어가지 않고 그 재화와 권력을 다스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웃을 자신감 있게 대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큰 원수로 생각하는 이웃까지도 용서할 수 있다. 아버지를 향하여 걸어가지 않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한 용기를 잃는 것이며 세상과 이웃의 도전에 불안해하며,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를 향하여 걸어 보라. 우리의 발걸음에는 힘이 들어가 있고,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절망하지 않으며, 늘 희망을 갖고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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