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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에수님은 왜 유다에게 돈 주머니를 맞기셨나? 의 묵상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6-06 조회수530 추천수5 반대(0) 신고

 

 


제가 감히 유다에 대한 묵상을 나누려니 두렵고 떨리는 마음입니다.
 제가 유다와 같은 주제임을 잘 알기에 그렇습니다.어쩌면 처지가 똑같기에 나눌 수 있고 나누어서 바로 볼 수 있고 바로 봄으로서 예수님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나누겠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유다만 그런 마음(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이스라엘의 하느님 나라화)으로 예수님께 왔을까요?아닙니다. 모두 똑같은 마음 이었습니다. 그들은 서열 다툼을 하였다고 성경은 말합니다.(루카9,46)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예수님이 보신 것은 그들 중 유다 안에 더 큰 마음이 있음을 아시고 유다에게 사랑과 믿음과 소망을 담아 건네 주신것이 돈주머니 였습니다.

제 아들이 초등학교 시절 제 지갑에서 돈을 훔쳐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처음에는 꼭꼭 잘 숨기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습니다.아니었습니다. 어느분이 이렇게 조언해 주셨습니다."아이에게 돈을 맡기셔야 합니다."저는 월급타면 아이에게 돈을 감춰둔 장소를 알리고 문담속 잘 하고 잘 지켜야 한다고,만일 도둑이 들어와 훔쳐가면 우린 한달을 굶어야 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그 후로 돈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유다를 돈 관리 잘할 놈이라 믿었기에 돈 주머니를 맡기셨다고만 생각하시면 예수님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한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돈이 관리가 잘 되어 그것으로 구원 사업을 하실 뜻이 없으셨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은 유다에게 "나는 너를 믿는다"는 신뢰를 주시고 유다가 그 믿음에 응답하는 사람으로 살아 주길 원하는 깊은 사랑이었습니다.

유다가 회심하길 얼마나 열망 하셨으면 변하지 않을 그를 향해 "그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마르14,21ㄴ)하시며 마음 아파 하셨겠습니까?아마 사시는 동안 줄곧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이 유다였을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요한12,6)

이 말씀이 유다에게만 해당되나요? 우리는 돈보다 가난한 이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나요?그렇지 않다면 우리도 도둑입니다.내 돈이라고 우기는 그 돈이 다 내 돈 인가요? 내 돈 인양 맘대로 쓰는 나도 유다와 똑같은 도둑입니다.

 루카는 "그러자 사도들은 자기들 가운데 그러한 짓을 저지를 자가 도대체 누구일까하고 서로 묻기 시작하엿다."(루카22,23)

이 모습이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인가에 대하여 묵상해 보아야 하며 요한이 전하는 기사에서 더욱 깊이 들여다 보고 정말 뼈아프게 우리의 공동체의 실상을 보고 반성해야 할 일 입니다.

요한 복음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깊게 묵상해 보면 유다가 배신할 것을 베드로와 요한은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요한13,21-26참조) 그런데도 이문제를 진지하게 풀어나가려는 시도도 하지 않습니다.예수님께서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 넘길 것이다."하셨을 때 베드로는 요한에게 고갯짓을 하여 그가 누구인지 여쭙게 하고 그는 예수께 더 다가가 그가 누구입니까?하고 물었으므로 싸인을 주고 받은 둘은 분명히 알았다는 말입니다.왜 그랬을까? 나만 아니면 그만인가?

지금도 우리 공동체 안에서 발생하는 예수님과 반대되는 모든 문제들은 예수님을 파는 것과 똑같은 일이지만 베드로와 요한이 침묵하였듯이 지금도 그때와 똑같은 삶을 우리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요한복음사가는 유다의 배신이 유다만의 책임이 아니라 공동체 모두의 책임이 있다고 알려주고 계신 것입니다.

루카복음에서처럼 그가 누구인가에만 관심이 집중되면 해결 책이 없습니다.누구인가라는 뜻에는 이미 단죄의 의미가 들어 있기때문입니다. 혹시 내가 이러저러한 생각에 살고 있는데 이런 내 생각이 예수님을 파는 생각은 아닌가 하며 서로 제자들은 진지하게 자신을 내놓고 지혜를 구해야 했습니다.요한복음사가는 그사건을 너무도 솔직하게 시인하고 계신 것입니다.그리고 꼭 명심해야 할 것은 어느 부모가 자신의 계획과 목표룰 위해서 자식을 희생시기려고 낳겠습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고 하시는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고 계십니가?

하느님(성부) 당신이 직접 이세상에 오신 것보다 아드님을 보내신 사건은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큰 사랑의 표현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칠 때의 그 심정을 느낄 수 있다면 말입니다........

 

사랑! 모두들 어렵다고 하십니다.

아닙니다. 어려운 것이아니라 할 마음을 먹지 않은 것 입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팔려는 마음을 먹었기에 그렇게 한 것처럼 사랑하려는 마음을 먹는다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힘 빠지게 하는 한마디가 있습니다.

말씀 다듣고 하는 말 "알긴 알겠는데요"입니다.

예수님을 힘나고 기쁘게 하는 말 "한번 해 보겠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마음은 훤하데 쉽지 않습니다.

잘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알랠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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