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6월 6일 부활 제7주간 월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
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1-06-06 | 조회수599 | 추천수13 | 반대(0) 신고 |
6월 6일 부활 제7주간 월요일-요한 16장 29-33절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부디 행복하세요>
유언이란 것이 있습니다. 물론 재산분배와 관련된 법적 유언도 있겠지만, 죽음을 목전에 둔 부모,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먼 길 떠나는 부모, 남아있는 자녀들이 물가에 내어놓은 아기들처럼 그저 걱정되고 안쓰러워 차마 눈을 감기 힘든 부모가, 둘러 서 있는 자녀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 남기는 마지막 당부는 얼마나 소중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최근 잇따라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저희 수도회 형제들이 아직 좀 더 갈 길이 남아있는 우리들에게 남긴 유언들은 얼마나 가슴을 저리게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이 좋은 세상에서 부디 행복하세요.”
“하느님은 정말 사랑이십니다.”
저희 할머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 남긴 유언은 참으로 힘이 있었습니다. 당시 다들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던 둘러서있는 저희 모두를 향해 “나 죽거든 다들 꼭 천주교 나가!” 할머님의 유언 앞에 부모님을 비롯한 저희 가족 모두는 장례식을 마친 후 아무소리 하지 못하고 바로 성당으로 직행했습니다.
‘까마귀발’(Crowfoot)이라는 이름의 한 인디언 젊은 전사는 전쟁터에서 큰 부상을 입고 죽어가면서, 떠나야 될 세상이 얼마나 아쉬웠던지 죽기 전에 적은 유언의 내용이 이렇습니다.
“삶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밤중 반딧불의 섬광 같은 것, 한 겨울 들소의 숨소리 같은 것, 그리고 해질녘 풀잎이 만드는 작은 그늘 같은 것.”
오늘 복음 내용을 가만히 묵상해보면 떠나가시는 예수님께서 자녀들인 우리 각자를 위해 남기신 유언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얼마나 우리에게 큰 위로를 주는지 모릅니다. 강력한 에너지를 건네주시고 열심히 살아갈 동기를 제공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예수님의 유언은 보통 일반 사람들의 유언과는 질적으로 크게 다릅니다. 예수님은 떠나가시지만 결코 떠나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 계시던 자리로 복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영원히 자리하실 곳은 결코 이 지상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세상 사람들이 당신을 세상의 왕좌에 앉히려고 할 때 그토록 극구 반대하셨던 것입니다. 그분의 자리는 이 세상과는 ‘게임이 안 되는’ 영원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승천은 ‘빠이빠이’ 하시는 예수님으로 인해 슬퍼하는, 아쉬워하는 순간이 절대 아닙니다. 그보다는 승천을 통해 당신의 실체를 명확하게 보여주신 대사건에 감사하며 행복해하는 순간입니다.
뿐만 아니라 고맙게도 더 큰 결속력으로 우리와 결합하시기 위해 협조자 성령을 우리 각자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당신을 대신할 협조자, 아니 당신 본인이신 성령을 우리 친구로, 도우미로 관계를 맺어주시고 떠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떠난다고 말씀하시지만 사실 전보다 더 우리와 가까이 계십니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 각자의 안으로 들어오셔서 제대로 당신 자리를 잡으십니다. 우리 내면의 주인이 되어 오십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끝날 때 까지 우리 안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쉬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매일의 십가가 무게가 너무 무거워 벅찰 때면 바로 옆에서 함께 십자가를 짊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때 마다 우리와 함께 나란히 서셔서 같이 고난을 겪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하루하루의 삶이 고난의 연속이고 비틀비틀, 좌충우돌한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힘을 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