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람 사는 세상 [세상인간/인간세상 분별] | |||
---|---|---|---|---|
작성자장이수 | 작성일2011-06-07 | 조회수309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사람 사는 세상 = 세상인간이 아닌, 인간세상을 말한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루카복음서 6, 36> ........................................................................................................................................................... 자비로운 사람...세상은 하지 못하고, 인간이 해야 하는 일이다. 세상 지성주의자들(세상의 지혜)의 주장들을 들여다 보면 이 세상은 미움과 갈등과 반목으로 점철되어 있다. 물론 모순들을 극복하여야 한다는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세상에 살게 되는 사람들 즉, 자기 자신들은 그것에 멀리 있어 보인다. 사람이 사는 세상을 바라보고는 있지만 그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할 인간 자체에 대해서는 경시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세상이 변하여야 한다면 사람이 먼저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 자체가 변하지 않고 세상만을 변화시키려고 할 때에 인간을 짓밟고 다니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목적이 좋다고 할지라도 그 수단과 방법에서 나쁘다면 그런 사람들에게서 드러나는 세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단지 겉모습만 변형될 뿐 속모습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결국 세상을 위한다는 주장 속에는 당장의 목표달성을 위한 현세적인 다른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며 결코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의 상태들을 파괴시킨다고 할 수 있다. 인간 자체를 파괴하는 사람들이 어떤 세상의 모습을 제시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점은 오랜 역사적 경험에서 돌이켜 살펴 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의 '반인간적인 행태'에서 '사람이 사는 세상'은 요원하다. 인간은 세상 보다 인간 자기 자신에게 더 철저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그들의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런 세상'에 살 수 있는 사람만이 적응하며 살수 있게 될 것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소외되거나 또한 그들에게 새로운 지배 받으며 또다른 억압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들이다. 인간 자체를 중시하지 않는 세상에서 그런 사람들은 도리어 큰 반목과 갈등으로 서로에게 상처와 미움을 갖게 하며 세상을 어둡게 만든다. 그들에게서 사랑과 자비는 하나같이 '지배자'들의 논리로 치부되어진다. 만일 그들이 인간 자체에 목적을 두지 않고 세상에 그 목적을 둔다면 그들이 원하는 세상이 되고 나더라도 역시 그들은 새로운 인간 지배자(억압자)가 된다.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직 세상 생각뿐이니 그런 세상 유지를 위해서 자신의 지성우월감으로 다른 사람들을 속박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역사는 단지 반복할 따름이다. 인간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은 그런 인간에 의해서 제시되어지는 세상이 아니라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뜻에 맞는 '새로운 인간상'에 의해서 정녕 사람이 사는 세상, 하느님의 나라를 경험해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세상은 용서의 나라, 자비의 나라, 평화의 나라, 감사의 나라, 사랑의 나라이다. 이처럼 인간이 변하지 않고서는 인간은 여전히 '세상 인간'으로부터 해방되어지지 못한다. 모름지기 '인간 세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세상의 청사진을 두고 있는 '세상 인간'이 아니라 어떤 인간의 청사진을 두고 있는 '인간 세상'인가 하는 점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사람이 되신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그러한 '인간 세상'을 말씀하신다. 세상을 위해 기도하지를 않으시고 인간("아버지의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시고 계심을 요한복음서는 기록하고 있다. 세상을 위해 말하는 사람들은 인간 자체를 파괴하는 언행들을 과감하게 전개한다. 그런 이들에게는 오히려 자기 자신들에게 '세상에 대한 청사진'이 아니라, 올바른 '인간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가꾸어 갈 필요가 있다 하겠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다. 다시말하면 그분께서는 '아버지의 사람' 곧 인간에게 제시된 '하느님의 사람'이시다. 사람사는 세상이 되는 '인간 세상'을 위한 인간 자기의 '인간 청사진'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인간 청사진은 '십자가의 인간'이다. 이 새로운 인간은 그리스도 (진리의 말씀) 안에서 참된 평화와 참된 생명의 십자가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내어주며 사랑을 나누고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이 하지 못하는 일은 세상 자체가 아니며 바로 인간이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2009-09-09 오전 10:14:47
..............................................................................................................................
"19세기 이래 교회의 [ 사랑 활동에 대한 반대 움직임 ]이 일어났고, 곧이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 사랑의 활동이 아니라 정의 ]라고 하는 마르크스주의의 특수한 주장으로 발전되었습니다. [ 사랑의 활동 ]은 실제로 부자들이 '정의'를 위하여 일할 의무를 회피하고 양심의 짐을 덜어내기 위한 수단이 되어 그들(부자들)의 지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빼앗는다는 것입니다." < 베네딕토16세 교황님의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회칙 중에서 >
"세상에 가득찬 불평등에 대한 한층 더 예리해진 의식은 그 자체가 모순과 불균형을 낳고 또 심화시킨다. 인간 자신이 바로 그 원인이고 인간 자신이 희생제물이 되었습니다." <제2차바티칸공의회문헌, 사목헌장 중에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