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오늘의 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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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민숙 | 작성일2011-06-13 | 조회수352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살면서 억울한 일이 많습니다.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기도 하고,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으로 소외를 당하고 미움을 받기도 합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학벌이나 외모 때문에 차별을 받기도 하고,
누명을 쓰거나 이유 없이 해를 입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기도 합니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산다는 것이 이렇게 녹록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나에게 고통을 안겨 준 사람에게
그만큼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면 얼마나 시원하겠습니까?
내가 받은 슬픔과 고통을 그들도 똑같이 받아 보아야
그들이 정신을 차리고 정의가 바로 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탈출 21,24)는
‘복수 동태법’이라는 법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그와는 반대로 더 억울한 말씀을 하십니다.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고”, “속옷을 가지려거든 겉옷까지 내주어라.”고 말씀하십니다.
더구나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45)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정의는 어디에 있느냐고 항변하고 싶어집니다.
폭력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은 ‘사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악을 악으로만 갚을 때 그 악의 세력은 더욱 번창해 갑니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돌려 대 주는 누군가의 ‘바보 같은 사랑’과 희생이 있을 때라야
악은 그 힘을 잃고 맙니다. 사회에 질서와 정의를 세우는 것은 인간이 만든 법과 힘일 것 같지만,
사실은 더 깊은 곳에 누군가의 희생과 사랑입니다.
전능하신 힘을 가지신 주님께서 결국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바보 같은 사랑을 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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