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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618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6-18 조회수306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1년 6월 18일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24-3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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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오늘 복음은 시작부터 우리에게 심각한 갈림길에 서게 만듭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라고 예수님은 한 마디로 잘라 말씀하시지만 이 말씀에서 부터 우리는 못보던 우리 자신들의 모습에 몇 번이고 갈라지고 갈라지는 그래서 어느 곳에 서 있는지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결론을 끌어와서 생각해보면 마치 하느님이 재물과 당신을 비교하며 시샘하시는 듯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둘의 관계를 이렇게 나누어서 생각해본 일이 별로 없는 듯 합니다. 그리고 이 둘이 관계가 결코 함께 갈 수 없다는 생각도 잘 해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양쪽은 함께 가야 하는 것이라는 태도가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결국은 돈이다."


몇 해 전 성당에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결국 돈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에 모두가 수긍하는 모습을 보며 '이건 아닌데...' 말 못하는 자신을 본 일이 있습니다. 아니라고 말하기에 너무 절실해 보이는 재물이었습니다. 아니라고 말하지만 재물이 없으면 신앙생활마저 위태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고 느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이미 재물을 기준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누구든 아니라고 말할테지만 많은 부분 신자들을 나눌 때도 재물을 중심으로 사람이 평가되고 등용되는 것이 그리 드문일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재물로 환산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고 말하지만 누군가 이를 두둔하면 더 발전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사회의 법칙에 순리대로 따르고 그것을 하느님의 은총이라 말하면 성공할 수 있는 구조가 이미 서 있습니다.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성경은 그런 것을 뒷받침할리 없지만 어떻게든 끼워맞추면 또 맞춰지는 것도 사실이며, 부자가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말이 그러면 우선 부자부터 되고 보자는 말로 바뀔 수도 있는 것이 또한 현실입니다. 세상에서의 성공이 하느님의 은총이기에, 그 이유는 하느님을 잘 섬겨서라는 사사로운 표현이 일반적인 것도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


그러나 예수님은 애석하게도 이런 우리의 공식을 싹부터 잘라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집착하는 재물에 대한 모든 것에서 우리를 떼어내시려 작정을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우리의 생명은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고 세상은 하느님 안에서 움직임을 깨달아라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미물들조차 하느님의 사랑 안에 있음을 깨닫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에서 일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얼마나 자신에게 약한지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에 대한 집착으로 초점을 잃어버리고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조차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을 쫓아가며 그들이 바라는 것을 하느님의 힘으로 얻으려는 하느님을 재물의 도구로 삼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자신의 선택처럼 신앙을 말하지만 이는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이들은 우리의 모든 생활이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 맡겨져 있음을 깨닫고 오히려 세상이 살기위해 바라는 것 말고 다른 가치를 찾기를 이야기하십니다. 그것이 하느님을 섬기는 이의 자세라는 이야기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주님의 멋진 마무리 말씀에도 왠지 기분이 석연치 않은 것은 우리가 이 말씀조차 왜곡할 가능성이 보여서입니다. 만약 우리의 눈이 결국 재물에 가 있다면 우리는 주님의 이 이야기도 그 재물에 대한 군침을 흘리며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에 투자하듯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잘해야 하고, 하느님 말씀을 잘 따라야 한다고 말입니다. 


걱정이 병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걱정을 넘어 현실이 되어 있으니 말씀이 너무 선명하고 뚜렷한 진실로 다가올 때 이 병도 깊어지는 듯 싶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돈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는 돈부터 벌고 성당 다닐려구요." 



저는 쉽게 그 말을 말리지 못했습니다. 그건 저에게 던져지는 질문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다 하신다고 줄기차게 말하고, 가르치면서도 당장 눈 앞에 재물에 어이없이 허물어져버리고는 하느님께 재물을 해 달라고 두 손을 모으는 어리석은 모습 위로 주님의 부질 없는 이야기가 겹쳐집니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재물의 편에 선 사람들이 하느님마저 이용하는 데 겁이 없는 세상, 그들의 걱정에 하느님이 도구가 되어버리는 세상을 바꾸어야 합니다. 내일 걱정에 앞으로 행복해지리라 늘 말하는 세상은 바뀌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의로움을 찾읍시다. 그 때 우리는 세상에서 무엇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내일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을 행복하게 살게 될 겁니다. 하느님만으로 충분한 세상을 꿈꾸며 오늘을 보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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