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모세의 연인들 제2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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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1-07-01 | 조회수924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 샬롬 샬롬
1편에서 계속입니다.
가족의 사랑과 돌봄으로 모세는 파라오의 작전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불꽃이 활 활 피어 오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인명재천"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수명은 하느님이 주십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주신 그 수명도 인간이 관리하지 아니하면 다 얻어 누리지 못함을 오늘 이 묵상을 통해서 잘 보고 계십니다.
모세의 연인들이 하느님의 일에 목숨을 걸고 협력하지 않았다면 하느님께서 모세를 구원의 도구로 쓰시고자 하셨더라도 그렇게 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창세기 2장에서 하와를 아담의 협력자로 만들어 주신 그 목적에 합당하게 잘 살아 주고 있는 모습입니다.
인간은 혼자의 힘으로 세상을 돌볼 수 없으므로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주셨음을 이미 배우셨습니다.
미리암과 어머니의 목숨 건 애씀으로 석달을 무사히 모세를 숨겨 키웠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었을 때도 그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또 다른 방법을 찿아 나섭니다. 사랑은 포기를 모릅니다.
모세를 왕골 상자에 넣어 떠나 보내지만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보냅니다.
어느날 어느시에 누가 강에 목욕하러 오는지에 대해서 사전 조사를 철저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추정입니다.
이집트 파라오에게는 많은 자녀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세를 건져다 왕자로 삼은 공주는 그 애기가 희브리인들의 아기였음을 알았는데도 불구하고 왜 데려다 왕자로 키우려 했을까요?
이 여인이 모세의 세 번째 연인입니다.
당시의 상황으로 강에 버려지는 애기는 모두 파라오의 명령에 의해 버려지는 희브리인들의 아기가 분명한데 그 아기를 키우다 들키면 아버지 파라오에게 어떤 불똥이 튀길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그녀는 정치적 야심가 였으리라 추정합니다.
아기가 불쌍해서 선택했다고 보기에는 당시 얼마나 많은 아기들이 모세와 같은 운명이었는데 연민으로 자신의 목숨과 바꾸려고 그런 선택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정치적 야심은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희브리인들의 백성의 수가 이집트인의 수를 능가했다(탈출1,9)는 보도로 보아
그 공주는 히브리인을 자신의 왕자로 키워 훗날 쿠테타를 일으켜 왕위를 쟁탈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보아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의도가 불순해도 그것을 구원의 도구로 쓰심을 여러분을 이미 가리옷 유다의 경우로 알고 계십니다.
이제 아기 모세는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될 자질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또한 전쟁에서 이기려면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함으로 이미 이집트에 대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묵상해야할 것은 창세기에서 요셉이 그렇게 살았고 지금 모세가 살고 있듯이 내가 원치 않는 힘들고 고단해서 피하고 싶은 삶이 구원의 도구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삶을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를 깊게 돌아보는 시간이 되시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다음은 모세의 네 번째 연인인 모세의 부인 치포라를 묵상해 봅시다.
모세가 동족인 희브리인을 이집트인이 때리는 것을 보고 그 이집트인을 때려죽인 사건으로 파라오가 그를 죽이려 했으므로 파라오를 피하여 도망쳐서 미디안 땅에 자리 잡기로 하고 어떤 우물가에 앉아 있다가 미디안의 사제의 딸들을 만났고 그의 딸 치포라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여기에서도 모세의 불행이 시작되는 시점이지만 모세가 미디안의 사제를 만났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보아집니다.
앞으로 이집트 탈출이후 광야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시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안에서 모든 문제를 이해하면 어느 것도 의미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생기는 모든 문제를 나와 이웃의 구원의 차원에서 이해하려 한다면 위기는 곧 기회입니다.
저는 이것을 알기에 항상 이렇게 기도 드렸습니다.
"주님 이 어려움과 고통을 잘 견디게 도와 주소서. 이 위기가 기회가 되게 해 주소서.아멘." 그리하니 견디기도 쉽고 정말 기회가 되어 주었습니다.
이야기는 건너가서 모세가 하느님의 소명을 받고 이집트로 들어가는 이야기 입니다. 탈출 4,24-26의 말씀인데 처음에는 이해가 안되어 황당한 말씀이었습니다. 아니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하러 이집트로 들어가는 모세를 밤에 달려들어 죽이려 하신다는 내용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러실까?
아하! 모세의 부인 치포라는 미디안 사제의 딸로 이방인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언제부터인지는 정확치 않으나 모계가 이방인이면 그의 자녀는 유다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를 공동체에 받아들이려면 할례라는 의식을 치뤄야 했습니다.(창세17참조)
그런데 모세는 자신의 아들에게 할례를 베풀지 않은 상태에서 하느님의 일을 하려고 이집트로 들어가는 중 이었습니다.
여기에서도 모세의 협력자인 치포라가 얼마나 지혜있게 모세를 돕는지 묵상해 봅시다. 여기에서 보면 여자가 남자보다 번뜩이는 영감과 지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도움을 받는 자보다 돕는자가 더 지혜로와야 도울 수 있지 않는가요?
치포라는 순간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이것은 저의 개인적인 소견이므로 그냥 보아 넘겨 주십시오.
모세의 아들은 남성이라 할례가 가능하지만 치포라는 여성이므로 할례를 할 수 없어서 아들이 할례 때 나온 그 피를 치포라가 모세의 발에 댄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집트의 열 가지 재앙 때도 어린양의 피가 발라진 이스라엘의 집은 재앙이 피해 갔고 발 밑에 엎드린다함은 그의 소유임을 인정함의 의미에서 치포라의 그러한 행위를 통해서 그녀도 유다인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은 아닌가하고 생각해 봅니다.
아무튼 모세는 이렇듯이 많은 사람의 관심과 사랑으로 하느님의 협력자로 일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도 저희에게 이 모세의 연인들이 되라고 요청하시고 계심을 잘 들어야 합니다. 들으셨으면 우리 모두 그렇게 살려고 애씁시다. 아멘.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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