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생명의 말씀] 삶은 영원의 씨앗을 잉태한 텃밭 - 권철호 다니엘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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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권영화 | 작성일2011-07-10 | 조회수475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어느 수녀님의 말처럼 "접촉은 줄어들고 접속"만 늘어간다는 시대, 모니터만 바라보느라 인생의 드라마틱한 세계를 잃어버린 시대에는 영적인 세계마저 접속이 불가능한 시대로 만들어져 갑니다. 자연을 편리함의 장애물로,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세상은 정신마저 혼미해져 순수한 영적 세계에 대한 그리움만 더 키우는 삶이 되었습니다. 산다는 것이 그리움만 키우는 것이라면 그것은 분명 접촉 없는 접속만 늘어나고 있다는 반증이고, 달력에 새겨진 빨간 날, 휴일만 고대한다면 정작 참된 쉼은 간직하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일 수 있습니다. 삶이란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세상에 던져진, 세상에 뿌려지는 씨앗과 같은 것이 아니라 영원의 씨앗을 잉태한 텃밭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그래서 더욱 중요하게 다가오는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 속에서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고 땅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이고 삶의 태도입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지만 그렇지 못한 땅에 떨어진 씨는 빼앗기거나 뿌리가 깊게 박히지 못한 채, 숨이 막혀 끝내 열매 맺지 못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언젠가 성소란 어떤 직업에 부름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를 선택하는 것이라는 글을 읽고 공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마태 5,45) 주시는 하느님께서 누군가에게는 좋은 씨를 누군가에게는 나쁜 씨를 주시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씨도 그 씨를 받아 가꾸는 이의 정성이 없다면 결코 훌륭한 결실을 맺을 수 없다는 말씀은, 신앙이 전적으로 하느님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절대성을 간직하지만 인간의 협조 아래 주어지는 상대성마저 무시하지 않는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해서 신앙은 하느님 사랑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인간 믿음의 역사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삶이란 떨어지는 씨앗을 피할 수 없고 씨앗을 선택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품고 키우는 선택만은 할 수 있습니다. 떠오르는 태양은 막을 수 없지만 우산을 들고 나갈 것인지 양산을 들고 나갈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고, 삶의 냉혹한 비바람은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디딤돌이 되게 할지, 아니면 절망과 포기의 장벽이 되게 할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삶의 조건은 선택할 수 없지만 그 조건을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만큼은 선택할 수 있음이,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가 무한대의 방종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인격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자유만큼은 박탈당하지 않음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 삶이 좋은 밭인지 나쁜 밭인지는 그 밭에 열린 결실로 드러나는 것임을 안다면 씨를 탓하거나 주어진 조건을 탓하느라 인생을 허비하는 일은 없어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삶이 고통 중에도 인내를 품고 절망 속에도 희망을 간직하고 있으며 지상의 끝자락에 천상의 첫계단이 숨겨져 있음을 안다면, 이런 세상을 설계해 좋으신 하느님의 뜻이 그래서 신비롭고 신비롭습니다. 오늘도 그 신비가 우리를 가슴 뛰게 하고 세상이라는 놀이터에서 마구 뛰어 놀게 합니다.
--------------------------------- << 머무름 >> --------------------------------------
하느님, 제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일 평온함을 주시고
제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꿀 용기를 주시며
그것들을 분별할 지혜를 주소서.
- 라인 홀트 니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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