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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껍데기의 삶이냐 알맹이의 삶이냐? - 7.15,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7-16 조회수350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7.15 금요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1218-1274)기념일

탈출11,10-12,14 마태12,1-8

 

 

 

 

 

"껍데기의 삶이냐 알맹이의 삶이냐?"

 

 

 

오늘은 ‘껍데기의 삶이냐 알맹이의 삶이냐?’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아주 예전에도 다뤘던 주제입니다만 어제는 이 주제를 많이 생각했습니다.

우리 수도승들이 화두로,

아니 오늘 현대인들이 화두로 삼아야 할 말 같습니다.

 

알맹이의 삶이, 본질적인 삶이 아닌

부수적인 것들에 매몰되어

자기를 잊고 껍데기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날로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하여 영혼 없는 사람들이라는 말도 회자됩니다.

 

때로 멍하니 TV를 보고 있는 이들을 대하면

흡사 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깨어 살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껍데기의 삶으로 전락되기 쉬운

오늘날입니다.

 

 

우리 수도승들의 대부분 일의 특징은 익명성에 있습니다.

숨겨져 잘 보이지도 않고 밖에서 보면 초라하고 미미하기 짝이 없습니다.

얼핏 보면 참 시시하게 보입니다.

 

초라한 껍데기의 삶처럼

세상에 눈을 끌 수 있는 매력이란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이로써만 끝난다면 말 그대로 초라한 껍데기의 삶일 것입니다.

 

초라한 껍데기나 화려한 껍데기나 껍데기이기는 매 일반입니다.

화려한 껍데기의 실속 없는 삶에 몰두하다 보니 속은 텅 빈 빚쟁이들입니다.

 

맹목적으로 자본주의를 추종하는 나라들의 꼴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 수도승들의 초라하고 평범해 보이는 그 삶의 껍데기 안에는

숨겨진 보물인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육신이 껍데기라면 영혼은 그 알맹이고 그 알맹이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을 때 알맹이로 빛나는 숨겨진 보물 같은 삶이고

바로 우리 수도승들이 추구하는 삶입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것입니다.”

 

라 고백하는 사도 바오로에게서 그리스도로 빛나는 알맹이의 삶을 봅니다.

어제 읽은 어느 원로의 강연을 들은 사회자의 언급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원로의 지혜가 뭔지 팍 느껴지지 않나?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나도 그런 지혜를 갖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나?

  치열하게 사는 사람에겐 지혜가 생기지만

  습관적으로 사는 사람에겐 지혜가 생기지 않는다.

  깊은 사유를 하는 사람의 축적의 퇴적물이 지혜라고 본다.

  오늘 나는 빛나는 지혜의 현장을 만났다.”

 

며 사회자는 최대한의 존경을 원로에게 보였다 합니다.

치열한 알맹이의 삶을 사는 이들 안에 축적되는 지혜이나,

반면 습관적으로 타성에 빠져 사는 이들에게 축적되는 탐욕과 질투입니다.

 

알맹이의 삶은 지혜로운 본질적인 삶을 뜻합니다.

바로 오늘 예수님의 삶이 그러하고

오늘 기념하는 성 보나벤투라를 비롯한 모든 성인들이 그렇습니다.

 

오늘 아침 독서 시 지혜서의 말씀도 좋았습니다.

“지혜는 사람들에게 한량없는 보물, 지혜를 얻는 이들은

  그 가르침이 주는 선물들의 추천으로 하느님의 벗이 된다.”

 

하느님의 벗이 되어 살았던 성인들 한곁같이 지혜로운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치열한 사랑의 삶에서 나오는 지혜요,

예수님의 사랑은 본질을 직시하여 올바른 분별의 지혜를 발휘합니다.

 

안식일 법에 매여 껍데기의 삶을 사는 바리사이들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알맹이인 하느님으로 꽉차있는 주님으로부터의 확신에 넘치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상대화하여 살아있는 배고픈 현실을 직시하여

제자들을 두둔, 구원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자비 하나뿐이고

자비 앞에 모든 것은 상대화될 뿐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사람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바로 하느님의 자비가 분별의 잣대임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죄인은 밀 이삭을 뜯어 먹은 주님의 제자들이 아니라

이들을 단죄한 바리사이들임을 깨닫습니다.

 

자비가 지혜입니다.

알맹이의 본질적인 삶은 자비와 지혜의 삶입니다.

 

매일의 파스카 미사 축제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이자 지혜이신 주님을 모심으로

알맹이의 삶을 살 수 있게 된 우리들입니다.

 

바로 탈출기의 파스카 축제의 완성이 그리스도의 파스카 축제인 미사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다.

  이날이야말로 너희의 기념일이니, 이날 주님을 위하여 축제를 지내라.

  이를 영원한 규칙으로 삼아 대대로 축제일로 지내야 한다.”

 

바로 종살이에서 자유로,

죽음에서 삶으로 전환된 구약의 파스카 축제를 우리 것으로 삼아

우리는 매일 그리스도의 파스카 축제 미사를 드립니다.

 

날마다 거행하는 거룩한 파스카 축제인 주님의 미사가

매일을 축제일로 만들어주고

주님을 닮아 우리 모두 자비와 지혜의 알맹이의 삶을 살게 해줍니다.

 

우리가 껍데기라면 그리스도는 우리의 알맹이 영혼입니다.

그리스도로 충만할수록 빛나는 알맹이의 삶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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