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생명의 말씀] 기다리는 마음 - 고찬근 루카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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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권영화 | 작성일2011-07-17 | 조회수385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하느님은 햇빛과 비를 모두에게 차별 없이 내리시는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밭에 씨를 뿌리고 추수를 기다리는 농부이십니다. 우리는 하느님 밭에 자라는 밀일 수도 있고 가라지일 수도 있습니다. 가라지는 밀과 비슷하게 생겼고 똑같은 햇빛과 비를 먹지만 쓸모없는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느님 밭에 가라지가 생겨도 안타까워하며 조급하게 뽑아버리지 않고 추수 때까지 기다려주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소위, 악인들과 함께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악인들의 악행을 무척 참기 힘들어 합니다. 그들이 없어지면 세상이 얼마나 평화롭고 행복해질까 하는 생각도 간절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의 가르침은, 악인들을 응징하는 것은 하느님의 몫이지 인간의 몫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악인을 치다가 선한 사람이 다칠까 조심하는 분이시며, 악인들의 회개도 끝까지 기다려주는 분이십니다. 게다가 우리도 어쩌면 선하다고 착각하는 악인일 수도 있기 때문에 경거망동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악물고 악인들의 멸망만을 기원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한 사람들이 기를 더 펴도록 만드는데 힘쓰고, 회개를 위해 자신을 잘 들여다보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 선한 사람들과 선한 일이 많아지면 악인들은 스스로 없어질 것입니다.
오늘은 농민주일입니다. 우리나라는 이전에 농업국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국민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서비스업이 흥하는 것을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비스업은 대체로, 노력한 것 이상의 소득을 바라고 쾌락위주의 삶을 지향한다고 봅니다. 요즘은 심지어 '대박 나세요!'라는 말이 축복의 말이 되었습니다. 이런 풍조 속에 우리 인생의 진실은 왜곡되기 쉽습니다.
반면에 농업은 기다림과 인내, 정직과 소박함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밭에 흙을 갈고 씨를 뿌리고, 때로는 뙤약볕에, 때로는 진흙탕 속에 밭을 돌보는 농부의 마음 안에 인생의 진실이 다 담겨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도 환난과 괴로움, 굶주림과 가난, 고통과 좌절 등이 없어진 나라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수용하고 극복하는 나라입니다. 또한 쾌락이 실현된 나라가 아니라 고통이 소화된 나라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우리는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입니다. 흙에서 배울 것이 참 많습니다. 이 땅을 모두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덮어 버리고 아파트 속에 갇혀 살다 갈 수는 없습니다. 갑자기 흙냄새 그윽한 시골 뚝방 길을 맨발로 걷고 싶습니다. 뚝방 따라 녹색물결 치는 드넓은 논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망막에 초록물이 들도록 한없이 바라보고 싶습니다.
----------------------------------- << 머무름 >> --------------------------------------------
기도하는 사람은 연민의 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의 숨어 있는 의미를 간파하며,
세상을 언제나 더 깊은 회개로 초대합니다.
- 헨리 나웬 -
----------------------------------- << 묵상 >> -----------------------------------------------
농부의 마음을 누가 알까? 직접 농부가 되어 겪어보지 않았다면 쉽게 답하기가 힘들 것이다.
나의 아버지도 농사를 지으시는 분이시고 오늘은 나의 아버지가 주인공이 된 셈이다. 힘들어 가꾼 농산물을 철마다 딸에게 보내시고 계시는데 그 딸은 아버지의 마음을 얼마나 헤아리고 있을까? 알 수 없다. 알고 있어도 차마 말할 수가 없다. 그것은 그 노동의 댓가에 대한 배반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농사 짓는 일과 그것을 나누어 주는 마음이 신성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집에서도 공간만 생기고 틈만 나면 새싹채소다 유기농 텃밭이다... 웰빙식품들을 사들이고 직접 길러 보려고도 애써보지만 자연의 섭리에 따라 길러지고 온갖 미생물들과 농부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는 농산물과 비교하게 될 때마다 처참하게 무너진다. 참패다. 그만큼 과정이 중요하다.
오늘 복음에서 나는 무조건 가라지다. 그래도 내게 남은 하나의 희망이 있다면 전능하신 하느님의 사랑으로 내게도 새로운 삶과 사랑으로 하느님 나라의 밀이삭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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