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루어지는 예언과 사랑의 우상 [수,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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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장이수 | 작성일2011-07-19 | 조회수313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저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태오복음서 13, 1 - 14 / 수,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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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적에 '씨'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호박씨를 뿌리면 호박이 열리고 수박씨를 뿌리면 수박이 열리기 마련이다. 호박씨를 뿌렸는데 수박이 열릴리가 없고 수박씨를 뿌렸는데 호박이 열릴리가 없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하나의 작은 씨앗 안에는 뿌리가 있고 줄기가 있으며 꽃이 있고 열매가 있다. 어찌하여 작은 하나의 씨앗 안에는 이처럼 온갖 전체가 다 들어 있을까. 정말 신비로운 일이다. 그러면 하늘 나라의 씨앗은 어떠할까. 하늘 나라의 씨앗을 뿌리면 하늘 나라의 열매를 맺기 마련이고 다른 나라가 열리지 않는다고 하고 말할 수 있다. 하늘 나라의 신비이다.
'아버지'의 말씀은 하늘 나라의 씨앗이다. '아버지'의 말씀은 '아버지'의 뜻이다.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은 '아버지'의 말씀을 실행할 것이며 이는 '아버지'의 사람들이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아버지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왕국이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곧 '아버지'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예수님'을 분리시키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 속에 있는 '아버지'의 나라를 알지 못한다(갈 수 없다) 하고 말할 수 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시기 때문에 그러하다. 예수님을 모르고 하느님을 강조하는 사람은 하늘 나라를 모르는 것과 다름없다 할 것이다. 자기 안에 비록 하느님의 뜻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라고 말할지라도 자기 안에 예수님이 없으시다면 하느님의 뜻을 속이고 있는 사람이며 하늘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님의 말씀이 자기 안에 없고 하느님을 말하는 영혼은 '아버지'를 진정 알지 못한다. 다시말하면 '자기의 하느님'은 '예수님의 아버지'가 아닌 것이다. '아버지의 나라'에 대해 올바로 알지 못한다 할 것이고 자기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자기의 나라'를 망상하는 것에 불과하다.
자기 안에 성경 말씀은 있지만 자기 안에 예수님이 없다면 그것은 자기 안에 '죽은 말'이 있을 뿐이다. 하늘 나라에 관해서는 '아버지'의 나라가 아닌 전혀 다른 나라이다. 자기 안에 계신다고 하는 하느님은 참 하느님이 아니다 하겠다. 자기 우상이 자리잡은 것이다.
그런 영혼은 성경의 사랑(말)을 말하여도 예수님이 없는 사랑(말)이다. 자기 안에 예수님이 없고 자기의 하느님이 자기 안에 있는 사람은 사랑(말)을 많이 말하여도 예수님의 사랑, 참 하느님의 사랑은 아니다 하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이 자기 안에 없는 영혼은 주님이신 성령께서도 계시지 않는다. 성령으로 착각하는 "속이는 영"에 의하여 예수님의 말씀은 자기 안에 살아있지 못하고 죽어있는 것이다. 사랑도 살아있는 사랑이 아니라 죽어있는 사랑이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 살아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않은 하느님의(하늘의) 성전이신 예수님께서 자기 안에 없다면 주님이신 바로 그분 성령께서도 당연히 자기 안에 거하시지 않으신다. 살아계신 예수님(하느님의 성전)이 자기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켜 "성령의 성전"이다 하고 말한다. 주님이신 성령께서는 주님이신 예수님 당신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이 되시어 성령의 주님이 예수님께 거하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말한다 할지라도 자기 안에 예수님께서 살지 않으신다면 그같은 사람은 마치 성령의 사람처럼 보일지라도 속이는 영에게 지배받는 사람이다. 그런 영혼이 마치 사랑을 말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속이는 영에게 지배되어 있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치장된 사랑'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많이 말한다 할지라도 그 말은 참 하느님의 말씀, "아버지의 말씀"이 아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예수님이 자기 안에 없으면 성령이 아니며 참된 사랑도 아니다. 자기(인간)의 사랑과 하느님의 사랑은 다르다. '하느님의 사랑'에서 예수님을 빼면 사랑만 남는다. 예수님을 뺀 사랑만을 자기 안에 가져오면 그것은 인간(자신)이 사랑의 이념을 취하는 것뿐이다.
예수님을 뺀 사랑이 아닌, 예수님이 있는 사랑은 십자가의 사랑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아버지의 뜻'이다. (게세마니의 기도를 상기해 보자) 사랑의 성령께서도 다름이 아닌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바로 그리스도의 왕국, 곧 아버지의 나라이다. <가톨릭교회교리서 참조>
예수님의 그리스도적 사랑, 십자가의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전하여야 한다. 자신이 사랑을 실천하여도 사랑을 받는 이들에게 전하는 것은 사랑이 아닌 예수님을 전하여야 한다. 예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겸손한 영혼은 사랑을 전하는게 아니라 예수님을 영혼들의 마음 안에 전하며 사랑을 실천하여야 한다. 자신은 사랑의 도구에 불과하며 나를 통하여 영혼들을 사랑하시는 분은 예수님이 되셔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의 하느님, 자기의 사랑은 '사랑의 우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각별히 분별하고 예수님의 사랑(십자가의 사랑)이 전부이신 예수님의 말씀, 이는 곧 예수님 바로 당신 자신이신데 예수님을 자기 안에 마땅히 사시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예수님을 전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자기 안에 서고 자기 자신은 그 십자가의 인간( "자기 십자가" / 십자가의 벗)이 되어져야 한다. "좋은 땅"이다. 아버지의 나라(뜻)는 그리스도 십자가의 나라이다. 그리스도 십자가의 신비, 하늘 나라의 신비는 십자가의 말씀, "들을 수 있는" 백배의 열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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