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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장면도 아닌 것이/ 최강 스테파노신부
작성자오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1-07-29 조회수494 추천수9 반대(0) 신고
 

새로 옮겨 살게 된 지금 교황청 외방선교회 본부는 지난 번 지내던 학생신부들이 주축을 이룬 도미키꼬 수도원과는 달리 소수의 이탈리아 선교사제들과 선교지에서 은퇴하신 노사제들이 지내는 곳이라서 삶의 질적인 차원에서 훨씬 윤택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음식이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데 특별히 이 곳에서 먹는 모든 종류의 스파게티는 어느 전문 식당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맛있다. 올리브 기름과 약간의 토마토 소스, 그리고 홍합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는 해물 스파게티의 그 황홀한 맛이란...꿀꺽!

어느 날 잃어버린 여권을 다시 발급받기 위해 서류를 준비해서 대사관에 갔다가 예정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바람에 점심 시간을 놓쳤다. 혼자서 중국식당에 갈까 하다가 방에 일인용 김치 한 캔과 짜장라면 하나가 있는 것이 생각나 그냥 방에 들어와서 끓여 먹기로 했다.

아... 그런데 요즘 스파게티 맛에 푹 빠져 살았던 내게 새롭게 다가오는 그 짜장라면과 캔김치의 그 환상적인 조화에 나는 그만 감동하고 말았다. "자장면도 아닌 것이... 김장 김치도 아닌 것이... 이렇게 나를 감동시킬 수가 있었구나. 내가 너희를 진작에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이탈리아 사람들의 스파게티는 내 입을 즐겁게 하지만 순수한 한국인들의 음식인 김치와 자장면(음식 재료야 어찌 됐던 자장면은 분명 한국음식이다.)은 비록 그것이 어설픈 인스탄트 식품일지라도 훨씬 내 입에 들어맞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은 내 뇌리 깊숙히 각인된, 내 무의식 속 깊숙이 박혀 있는 내 맛의 근본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또한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가 또한 그렇다. 우리들의 존재의 근본을 건드리며 우리에게 새로운 부활의 삶을 선물해 주시는 하느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것', 혹은 '내 것'이어야 한다.

침략과 정복, 지배와 약탈을 일삼아 온 서양 제국주의와 함께 숙성된 서양인들의 영광의 하느님이 오히려 정 반대의 역사를 살아왔던 우리 민족들에게 얼마나 깊은 맛으로 다가올 수 있을까? 우리 중 누가 하늘의 군대를 이끌고 구름을 타고 재림하여 세상을 다시 정복할 메시아를 편안하게 그릴 수 있을까?

우리들의 집단적 무의식은 오히려 피지배 민족, 혹은 계급의 사람들이 품고 살아왔던 '한 맺힌 하느님'과 가깝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 영광스럽지 못한 지난 시간들 속에 찢기고 부러져 흐느끼고 있는 우리들 곁에서 조용히 함께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하느님은 어떤가?

더 늦기 전에 '나의 하느님'을 만나 더 풍요로운 절대자와의 교감 속에서 깊은 감동을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들의 하느님을 찾아야 한다. 우리들의 혈관 속을 자연스럽게 타고 흐를 수 있는, 우리들의 심장 박동에 맞추어 더 깊이 더 깊이 우리들 영혼 끝까지 흘러가고 있는 우리들의 하느님을 만나야 한다.

우리들의 지난 시간과 공간, 그리고 지금과 여기, 우리들에게 도래할 시간과 공간과 너무 괴리되어 있는 '하느님에 대한 교리적 진술'에만 만족하지 말고 철저하게 '나'와 하나가 되어 '생생하게 살아계시는 하느님'을 만나야 한다.

지금 슬픈가? 그럼 당신과 나란히 서서 당신의 어깨를 감싸는 위로의 하느님을 만나라.

지금 기쁜가? 그럼 당신과 나란히 서서 당신과 손뼉을 마주치려 기다리고 계시는 환희의 하느님을 만나라.

성서에, 교리에, 그리고 제도 안에 갇혀 계시는 주님을 당신의 생생한 삶의 현장에로 초대하라. 주님을 해방시키는 만큼 주님은 당신을 해방시킬 것이다.

자장면도 아닌, 김장 김치도 아닌 짜장라면과 캔김치가 좋은 올리브 기름에 홍합과 함께 비싼 접시에 담겨 나오는 스파게티보다 훨씬 깊은 맛의 느낌으로 다가 오듯이 그렇게 우리를 감동시키는 하느님은 초라할지는 모르나 '나의 삶'안에서 생생하게 살아계시는 하느님이시다.

짜장라면 먹고 이 정도의 감동이니 진짜 자장면 먹었으면 큰 일 날뻔 했다.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http://cafe.daum.net/frchoi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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