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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우리의 손을 빌어-반영억신부-(마태오 14,13-21)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1-07-31 조회수490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1 7 312011 7 31일(연중18주일)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다
(마태오 14,13-21)

  

말씀의 초대

하느님께서는 오래 전 다윗 임금에게 내리신 당신의 사랑이 변치 않았음을 전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께 귀 기울이고 그분께 돌아가면 생명을 얻고 그분께서 베푸시는 풍요로운 잔치에 참여하게 된다(1독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그리스도를 고백한다. 우리는 그분 사랑에 힘입어 세상의 어떤 환난이나 역경, 박해나 위협도 이겨 낼 수 있으며, 그 사랑은 세상의 무엇으로도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라고 전한다(2독서). 예수님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로 군중을 배불리 먹이신다. 이것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마련해 주신 것과 같은 장면을 떠올리게 하며, 오늘날 구원의 여정을 걷고 있는 신약의 하느님 백성에게 힘과 용기와 사랑을 주는 성체성사의 예표이기도 하다(복음).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는 대로,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시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분을 따르고 있습니다. 먹을거리는 벌써 동이 났습니다. 사 먹을 장소도 없습니다. ‘이대로 굶어야 하는가? 그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막연한 희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막을 오가며 장사하는 이들에게는 물이 곧 생명입니다. 때때로 그들은 죽음보다 더한 목마름을 체험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희망으로 버티어 낸다고 합니다. 참고 기다리면 오아시스를 만난다는 희망입니다. 그 일념을 살리지 못하면 목마름에 쓰러집니다. 희망은 그 자체가 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생의 사막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에 직면한 이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희망입니다. 포기는 희망을 접을 때 생겨납니다. 남들은 별것 아니라고 말하지만, 본인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는 법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다 먹을 것이 떨어진 군중도 같은 처지였습니다.
기다린 사람만이 기적의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남은 빵이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찰 만큼 풍족한 식사였습니다. 그들에게 이제 두려움은 사라졌습니다. 앞날에는 겁날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희망보다 더한 확신을 주셨습니다. 어쩌면 빵을 먹은 기쁨보다 주님의 능력을 확인한 기쁨이 더 컸을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기적의 핵심은 굶주림의 해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루어질 것 같지 않던 희망이 이루어졌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손을 빌어

  -반영억신부-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풍요롭게, 그러나 당신의 방법으로 주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열어 그분의 마음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은혜를 입으시기 바랍니다. 빵의 기적에 관해서 묵상하는 가운데 능력의 주님을 깊이 만나시길 희망합니다. 

예수님께서 바쁜 하루를 보내시고 외딴 곳으로 몸을 피하셨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가만두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어디에든 따라가서 자기들의 목적을 이루어야 했고, 예수님은 그들을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던 중 저녁 때가되자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여기는 외딴 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그러니 군중을 헤쳐 제각기 음식을 사 먹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을 보낼 것 없이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하시며 제자들과는 정반대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입장에서 볼 때는 돌려보내야 할 장소, 돌려보내야 할 사람들이 아니라 제자들이 먹을 음식을 주어야 하는 장소요, 먹을 것을 주어야 할 사람입니다. 돌려보내야 할 늦은 시간이 아니라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어야 할 시간입니다. 

다시 제자들이 “우리에게 지금 있는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입니다”(마태14,15-17)하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먹을 것을 너희가 주어라’ 하시는데 제자들은 ‘지금 있는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입니다’ 하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요것 밖에 없는데’….하는 것이 아니라 ‘이만큼이나 있는데’ 하는 새로운 생각이 없는 한 주님을 만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믿는 이에게는 ‘이까짓 것’이 아니라‘이것이라도!’입니다.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인간적인 생각 안에 머물러 있으면 인간을 뛰어넘는 주님을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무 도움을 필요 없을 만큼 큰 부자도 없고, 도움을 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도 없습니다.’턱없이 부족한 숫자이기는 하지만 나누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음식은 있습니다. 이것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만큼만 내 놓으면 되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의탁하여 내놓으면 풍요로워집니다.

 

호세아서 6장6절에 보면 “내가 반기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사랑이다. 이 하느님의 마음을 알아다오!”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저 많은 사람을 어떻게 배 불릴 수 있을까?’ 계산하지 말고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모두를 내놓으면 주님의 손을 거쳐 풍요로워 집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도 5천명이 먹고도 남는 넉넉함으로 채워 주십니다. 이렇게 그 풍요로움은 우리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는 우리의 손을 빌어 기적을 이루십니다. 

 

미국에 있을 때 본당에서 자동차로 2시간 넘게 떨러져 있는 멕시코 수녀원에 매주 토요일 빵을 전달하였습니다. 한 주간 동안 여러 빵 집을 돌며 모아놓은 빵을 토요일에 가져가게 되는데 보관할 장소가 마땅찮고 모으는 것도 생각보다 손이 많이 필요하였습니다. 자동차도 오래되어 늘 불안하였습니다. 더군다나 국경을 넘어 그 일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수녀원으로 모여드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긴 행렬을 보면 그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빵은 빵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표징이기 때문에 계속 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빵을 받는 이들은 배고픔에 주려 있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우리의 사랑에 더 주려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빵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정성과 사랑이 그 안에 얼마나 담겨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가진 사람은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가지고 일을 하면 더 넉넉해지고 사랑을 받는 이들도 머지않아 사랑을 실천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사랑의 기적이요, 사랑의 승리입니다. 

이제는 예수님께서 이루신 기적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가 이루어내야 합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는 말씀은 단순히 음식을 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각자에게 필요로 하는 것을 주는 것을 뜻합니다. 사랑에 굶주린 사람, 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싶은 사람, 인정받고 싶은 사람, 위로받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고 이야기시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먹을 것을 주어야 할 사람은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쉽지는 않지만,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베풀면 주님께서 모두를 배 불리시고 먹고도 남게 하실 것입니다. 나눈다고 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감소되거나 소멸되지 않고 오히려 덤으로 더 많은 것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웃을 향한 마음이 더 커지기를 희망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비록 미약하지만 주님의 이름으로 더욱 큰 풍요로움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작은 사랑의 실천에 마음을 쓰시기 바랍니다.

마더 데레사는 “사람들이 기아로 죽어가는 것은 하느님이 그들을 돌보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바로 당신과 내가 너그럽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손 안에 있는 그 사랑을 나누어 주는 도구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도구로 써 주소서” 하고 기도했습니다. 또한 톨스토이는 “모든 재물은 똥오줌과 같아 그것이 쌓여 있을 때에는 냄새를 피우고 뿌려졌을 때에는 땅을 기름지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도구로 거름을 뿌리고 기적을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소유하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더 가지려고만 하지 내어 놓을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아홉을 가지고 있으면 열을 채우려 하는 욕심이 있습니다. 반면에 나누어 주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리 작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나누어 주려는 생각을 합니다. 소유가 아니라 나눔을 더 기뻐했으면 좋겠습니다. 

마태복음 14장19절에는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손에 들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손에 들려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우리가 가진 것을 주님의 손에 갖다 드리면 엄청난 기적을 이루게 됩니다.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이든 기적의 재료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의 손에 무엇이 들려 있는지 보십시오. 무엇을 하려고 쥐고 있는지 보십시오. 주님의 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일 더하기 일은 막노동 이랍니다.

이 빼기 이는 틀니고요, 삼 더하기 삼은 인삼 두 뿌리래요.

그럼 100 배기 1 은 무엇일까요? 0 입니다.

100번 잘 하다가 한 번 잘못하면 말 장 헛일이라는 것이죠.

주님의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마태10,22).

자선으로 씨를 뿌릴 때 거기서 거두는 열매로 천국의 곳간이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성베드로 크리솔로고-

‘적게 뿌리는 사람은 적게 거두고 많이 뿌리는 사람은 많이 거둡니다”(2고린9,6) 그러니 많이 많이 뿌리십시요, 사랑의 씨앗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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