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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8주일 - ☆생명의 빵![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1-07-31 조회수379 추천수1 반대(0) 신고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찬미예수님

제가 그 전에 囚人사목을 6년 동안 했습니다.

그래서 한 달에 여러 번씩 교도소를 뻔질나게 드나들었습니다.

본당을 맡으면서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때로는 꾀도 많이 나기도 했어요.

특히 더운 여름에는 교도소에서는 종교 활동을 쉽니다.

“신부님, 한 달 동안 안 들어오셔도 됩니다.”

그래서 저도 ‘얼씨구나, 좋다~~ 더워 죽겠는데~~ 교도소 안 가도 되겠구나!’


그런데 어느 날 편지 한통이 교도소에서 왔습니다.

<신부님, 저 요셉입니다. 신부님께서 교리를 가르치실 때 분명히 이 세상에 다른 것은 휴가가 있어도 신앙만큼은 절대 휴가라는 것이 없다고 하셨는데 어찌 신부님은 안 들어오십니까?>

저는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주부터 다시 미사를 나가서 제가 사과를 했습니다.


맞습니다!

신앙은 휴가라는 것이 없습니다.

요즘 무척 덥습니다.

덥기 때문에 어떤 성당에서는 신자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본당신부님께서 주일 강론도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고 하는데 저도 그렇게 할까요?

안 되지요?

사제에게 있어서 강론이라고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기 때문에 착실히 준비해서 신자들에게 드려야 됩니다.

또 신자들은 사제의 강론과 성체를 영하고 한주일 동안 살아갈 힘을 얻게 될 겁니다.


여러분들, 최후의 만찬이라고 하는 그림 아시죠?

그 그림의 내용이 뭡니까?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제자들과 같이 마지막 식사를 하시는 장면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미사입니다.

 

레오나르드다빈치가 그린 그림인데 두 가지 점에서 아주 유명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모델과 유다스의 모델이 같은 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열 한 제자를 다 그려 놓고 다빈치가 인자하고 정말 사랑스러운 예수님의 얼굴을 한 사람이 없을까~~하고 예수님의 모델을 찾던 중에 어느 날 성당 안에 들어갔더니 어느 청년이 기도하고 있는데 그 뒤로 후광이 환히 비추었습니다.

 너무너무 열심히 기도를 하고 있었어요.

그에게 다가가  “내 그림의 모델이 되어주시오!”

그렇게 그 청년을 모델로 삼아 예수님의 얼굴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유다스의 얼굴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험상궂고 고통스럽고 욕심에 찌든 얼굴을 찾아 헤매었는데~~

어느 날 그런 인물을 만났습니다.

어느 술집에 갔더니 작부에게 빠져 가지고 몸 버리고, 돈 버리고, 난폭하고,술주정뱅이.....

타락할 대로 타락한 한 청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청년에게 술값을 더 주겠다고 하면서 설득을 해서

“내 모델이 되어 달라!”

그 찌그러지고 비열한 그 얼굴을 유다스의 얼굴로 그렸습니다.

다 그리고 났는데 그 청년이

“선생님, 저 몇 년 전에 본 적이 없습니까?”

“저 처음 보는데요.”

“아닙니다. 몇 년 전에 나를 모델로 예수님의 얼굴을 그렸는데 그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유다스는 동일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성체성사를 거행하실 그 순간에 가리옷 유다는 뭘 움켜쥐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받은 은전 30냥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 그림에 나옵니다.


우리식으로 해석을 하면 이 미사는 예수님의 만찬입니다.

주님의 성체성혈이 이루어지는 이 순간에도 우리들이 세속 욕심에서 마치 유다스와 같은 그런 모습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다면 우리들은 정신을 차려야 될 겁니다.


또 <지킬박사와 하이드> 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지킬박사는 낮에는 인술을 펴는 의사로서 많은 신망을 한 몸에 모으고

밤만 되면 이상한 약을 먹고 하이드라는 갖은 못된 짓을 하는 괴물, 마귀로

변해버린다고 하는 이야가 지킬박사와 하이드입니다.


아무튼 최후의 만찬에 나오는 유다스와 예수님이 한 얼굴이라든지

하이드와 지킬박사가 한 얼굴이라고 하는 이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중성을 나타냅니다.

누구든지 정도의 차이는 가지고 있으나 우리 모두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두 개의 얼굴이 항상 내 내면 속에서 다투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내 안에 두 가지의 법칙이 있습니다. 나는 내가 하려고 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하기 싫은 악을 행하고 있으니 아, 비참한 인간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 두 가지의 생명을 육과 영으로 구분하면서

육체에 따라 하는 사람은 그 육체가 썩으면 같이 멸망하게 되고

영으로 사는 사람은 비록 육신이 죽어도 영원한 삶을 산다고 하면서

육에 따라 사는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이 되도록 강권하고 계십니다.


우리들의 얼굴에는 예수님의 모습도 있고 유다의 모습도 같이 존재합니다.

유다스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느님의 진리를 절대로 깨닫지 못합니다.

미사를 수 천 번을 드린다 해도~~

수천 번 입으로 넘긴다 하더라도~~

그 성체의 신비와 기쁨을 깨달을 재간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5주 동안에 걸쳐서 요한복음 6장을 설교합니다.

그만큼 이 빵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천주교의 성체성사이기 때문에 핵심중의 핵심입니다.


2주 전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우리는 들었습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도 오천 명이 넘는 사람을 먹이는 그 그 빵의 기적을 보고 유다인들은 환장을 합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래서 기를 쓰고 쫓아다닙니다.

빵의 기적을 보고 놀라자빠진 유다인들은 어떤 면에 있어서 예수님의 영적인 것을 보고 쫓아온 것이 아니라 육체의 길을 따라 사는 무리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에 의존해서 더 쉽게 살 수 있는 방법~~

더 쉽게 설교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더 많은 기적을  예수님께 요구했던 겁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영적이고 내면적인 의미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영의 사람은 기적 뒤에 숨겨진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지만~~.

육적인 사람은 나타나는 그 현상만을 보지....

그 현상의 그 기적의 주인이 누구신지 모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나의 기적을 통해 준 이 빵을 너희들이 먹었지만 이 빵은 잠시  배고픔을 달래줄 뿐이지만 영원한 빵이 결코 아니다.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육신의 빵만을 쫓아다녔던 그들에게  이 말씀이 전해질 리가 없었습니다.

제자들 중에서도 ‘이렇게 어려워서야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하면서 수군거리고 떠나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더욱 더 강조하시면서

<나는 살아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주는 빵은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인간의 내면 안에는 예수님의 모습도 있고 유다의  모습도 있다고 그랬습니다.

지킬 박사의 모습도 있고 하이드의 모습도 있다고 그랬습니다.

惡 쪽에 기울어져 있다면 절대 빛의 신비를, 신앙의 신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자기의 지식이나 재주를 가지고는 하느님의 일을 알지 못합니다.


성체 성사는 단 한 번의 미사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나는 살아있는 빵이요,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셔라!> 고 했기 때문에 세상 끝날 때까지 우리 신자들은 성체를 통해 살아갈 겁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천주교신자들은 말씀이 약합니다.

그나마 그 약한 부분을 성체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성체가 없다면 천주교 신자들은 그야말로 오합지졸일 겁니다.


1608년 5. 24일, 성령강림대축일에 스위스의 국경 지방 파메르니 대수도원에서

성광에 성체를  모셔놓고 3일 동안 제대위에 현시하고 신자들이 조배를 했습니다.

그런데 촛불이 타들어가다가 제대포에 불이 붙어 순식간에 제대가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제대 한 가운데 있는 성광을 꺼내려 했지만 워낙 불길이 세어서 가까이 가기 힘들었습니다.

그 순간 제대 위에 있던 성광이 공중으로 떠오르며

제대 위에 한참을 머물렀는데 무려 33시간을 공중에 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만 명 이상이 그 성체가 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1608년 그때 당시에는 칼빈파, 루터파가 천주교신자를 끌어들이고 있었습니다.

뭘 가지고?

성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부정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천주교신자들이

‘그래, 이 조그만 빵에 무슨 예수님이 계셔~~ 안 계셔~~’

이렇게 부정하고 개종을 하는 천주교의 혼돈시대였습니다.


성체가 떠올랐다고 하는 이야기가 퍼지자 사방에서 말을 타고 많이들 쫓아 왔습니다.

의심하는 사람들은 혹시 성광 앞에서 눈에 보이지 않은 받침대가 있지 않을까~~

하고 추를 가지고 왔다갔다 흔들어 보기도 하였지만 분명이 공중에 성체가 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성체를 의심하고 부정했던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했습니다.


나중에 어느 사제가 불타다 남은 제대 위에다가 제대포를 깔고 성체포를 깔자마자

성광이 가만히 내려앉았습니다

바로 두 번째 기적이 있었던 겁니다.


고린도전서 1, 21절에 <세상이 자기 지혜를 가지고는 하느님을 알아볼 수 없는 것이요. 이것이 하느님의 지혜로운 경륜입니다.>

이사야서 29, 14절<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가 말라버리고 슬기롭다는 자들의 지혜가 숨어버리리라 .>


따라서 우리는 성체 안에 예수님이 현존해 계시고~~

이를 받아 모시는 이들에게 구원과 영생을 약속하신다는 것을~~

굳게 믿어야 되고~~

또 믿고 있는 것을, 믿고 있다는 것을 실제행동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성체에 대한 신심은 첫 단추부터 잘 채워져야 합니다.

첫째, 성당 안에  들어왔을 때 성체에 집중하는지 먼저 생각해 보아야 될 겁니다.

성당은 성체가 모셔져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몸가짐을 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당 안에 들어 왔을 때~~

성당을 떠나 갈 때~~

정성어린 마음으로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의 깊이 숙여 인사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성체 안에 계신다는 것을 믿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믿음의 행위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누구든지 성당에 들어오면 감실 쪽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예의를 표했습니다.

두 번째, 성체를 영하는 우리의 마음자세도 중요합니다.

영세를 했으니까 받아먹을 자격이 있으니까 받아 먹는다는 식으로 성체를 영할 때는 받아먹는다면 절대 영적 기쁨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성체를 받아먹는 자세는 내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주신다는

성체를 받아 영하기에 합당치 않음에도 모시는, 주님께서 나의 몸 안에 들어오셔서 내 살과 피가 되었다는 것을 깊이 감사하면서 성체를 영한다면 우리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평화와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토마스아퀴나스 성인이 말씀하셨듯이

<인간이 하느님으로 변화되는 순간이 바로 영성체하는 순간입니다!>


한 가족이 이러한 마음으로 성체를 모시고 변화가 된다면

그 가정은 예수님이 모여 사는 성가정이 될 것이고, 작은 교회가 되고 더 나아가서 그러한 성가정이 모여 이루어진 공동체는 바로 아름다운 공동체가 됩니다..

그래서 성체는 신자들을 이어주는 열쇠요, 깨어진 가정을 이어주는 열쇠고리가 됩니다.


교우 여러분,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은 언제나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복잡하고 불안스럽고 살벌한 생존경쟁 속에서 살아가려면 우리에게 광야가 있어야 됩니다.

광야는 기도하고 명상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기도하고 명상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계신 성체 앞에 앉아서 기도하는 성당만큼 좋은 장소는 없습니다.


프랑스의 아르스라고하는 곳에 어느 순박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이 농부는 일터에 나가거나 돌아올 때에 감실 안에 계신 성체께 오랫동안 조배하였습니다.

연장을 밖에 두고 무릎을 꿇고 마냥~~ 기도하였습니다.

본당신부님은 그 유명한 성 요한 마리 비안나 신부님이셨는데 이 겸손한  농부를 기특히 여기시고

그처럼 오랫동안 기도할 수 있느냐~~ 하고 물었는데

그 농부는 미소 지으며 대답하기를

“저는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습니다. 그저 예수님을 바라보면 기뻐지고 마음에 행복을 느낄 따름입니다.“


이렇게 정성어린 기도는 성체를 영하는 이들을 올바로 배령하게 만들어 줍니다.

성체를 하루라도 모시지 않는 날은 마음이 허전함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현대의 성인이신 오상의 비오신부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햇빛이 없이 나는 살 수 있지만 성체가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오십니다

사제가 “그리스도의 몸!” 하면 이 말뜻은

“예수님, 들어가십니다. 모시십시오!”

그럼 여러분들은 “ 주님, 들어오십시오, 아멘!”

대답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들어가 앉아 기도하십시오.

토마스아퀴나스 성인의 말씀처럼

<인간이 바로 하느님이 되는 순간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비슷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예수님이 되는 것이기에

성체 영하시고 자리에 들어가셔서 여러분들이 스스로 치유기도 하실 수 있고 그리고 마음에 어두움이 있는 분들은 구마기도 하시면 바로 예수님께서 쫓아내어 주실 겁니다.

오늘 우리 성체께 대한 뜨거운 신앙심을 가지고 오늘 미사 중에 오시는 성체를 기쁜 마음으로 영하도록 합시다.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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