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실패하신 하느님
우리는 천재지변으로 인한 고통보다 인간 서로간의
이기심과 무관심, 악의가 빚어내는 고통이 더 참기 어렵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불치병으로 죽은 자식에 대한 슬픔은 참아 낼 수도 있어도
음주 운전자가 낸 사고 때문에 자식이 죽었다면 이야기가 달라
진다.
그러므로 하느님과 악령과 자연 또는 적대 관계 등 속죄양을
찾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을 심판대에 올려놓고, 인류의 고통에
대한 우리 자신의 책임을 묻는 것이 더 진지한 태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실패하신 것인가?
하느님께서는 이 땅에서 영원한 사랑이 시작되기를 바라셨다.
그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지만
우리는 그 자유로 피와 눈물로 범벅된 고통의 역사를 만들어 냈다.
우리는 자유를 행사함으로써 하느님을 궁지로 몰아넣었고 그분의
의도를 결정적으로 좌절시켰다.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는
하느님을 이해하지 못했고, 하느님도 우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셨다는 사실이다.
사실 인간이 하느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당신 뜻을 거슬렀지만,
그분은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시고 우리가 서로 용서하고 화목
하게 살기만 바라고 계심을 보여주시려고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
를 세상에 보내셨다.
그러한 예수님에게 친척들은 "미쳤다."(마르3,21)고 했고,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의 진실성을 의심하고
거부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이였다.
그들이 아는 한 하느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은총을 베풀고 모든
이를 평등하게 사랑하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하느님 뜻에 충실하고 순종했던 예수님은 하느님을
모독한 이로서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우리를 이해시키기 위해 그분은 그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던 것이다.
너희가 나의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다만 이 놀라운 메시지를
위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을 믿어다오.
내 아버지께서는 너희 모두를 귀중히 여기신다.
십자가 위에서 외치는 저 사랑의 목소리를 우리는 언제쯤이면
알아들을 수 있을까?
오늘의 묵상 :
“인류의 타락으로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신 것을 몹시 후회하셨으며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창세6,5-6)
‘내가 창조한 사람들을 이 땅 위에서 쓸어버리겠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들과 하늘의 새들까지 쓸어
버리겠다. 내가 그것들을 만든 것이 후회스럽구나.”(창세6,7)
“그러나 노아만은 주님의 눈에 들었다.”(창세 6,8)
노아의 제사와 하느님의 다짐.
노아는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들 가운데에서 번재물을 골라 그 제단 위에서
바쳤다. 주님께서는 그 향내를 맡으시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셨다.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이번에 한 것처럼 다시는 어떤 생물도 파멸시키지 않으리라.
(창세8,20-21)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내리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워라”하셨습니다.
우리들은 하느님을 슬프게 해드려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들은 하느님께 무엇이든 달라고만 기도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어찌 보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면서
우리들이 자유로운 선택으로 기쁘게 살려고 노력해야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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