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자는 등용하지 말것이며,
한번 등용한 자는 끝까지 믿어라"라는 말이 있다.
믿음은 모든 관계에 있어서 가장 필수적이고 근본적으로 요구되는 사항이다.
하지만 신문지상이나 T.V.를 통해 전해지는 지난 대선때의 불법선거자금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을 대하다보면 어쩌면 의심과 불신이 인간의 기본적인 정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부정직한 청지기와 주인의 비유에서 처럼 주인은 소문만을 듣고 청지기를 내쫓을 정도로
평소 많은 의심과 불신 속에 살고 있었고, 청지기 역시 주인의 해고 통지에 즉각 술수를 부려 살 궁리를 해 놓는다.
참으로 불행한 관계이다.
불신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온갖 의혹과 비리에 싸인 이 세상 역시 참으로 불행한 세대이다.
이런 세상의 한 가운데에서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신앙인들은 도대체 무엇을 믿으며 살아간다는 것일까?
신앙인들은 우선적으로 '전능하신 천주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창조주이신 하느님만을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창조주 하느님을 철저히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과 하느님의 피조물로서의
모든 인간 존재를 함께 믿는 것이다. 이 세상이 온통 불의에 싸여있는 것 처럼 보여도
'하느님 나라'에로의 완성을 지향하는 도정에 있음을 믿는 것이고, 모든 인간 역시
종국에는 무한한 하느님의 구원의지로 인하여 구원받을 수 있는 대상임을 믿는 것이다.
하느님만을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기적'을 위해 기도한다.
하지만 하느님과 세상, 그리고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변화'를 위해 기도한다.
'기적'은 온전히 하느님이 활동하시는 영역이지만 '변화'는 하느님의 은총과 세상과 인간의 응답내지는 동의에 관계되는 영역이다.
'지금 그리고 여기(hic et nunc)'라는 현실의 시공간에 대한 믿음없이 어떻게 한 선교사제가
이국땅의 이민족들을 향하여 기쁜 마음으로 떠나갈 수 있겠는가?
기쁘고 생기넘치는 선교의 원천은 이렇게 하느님과 세상과 인간에 대한 믿음에 있는 것이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진리이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은 우리를 평화롭게 할 것이다.
진리이신 하느님과 하느님께서 지으신 창조계 그리고 하느님께서 지은신 피조물로서의
인간에 대한 믿음은 우리를 자유롭고 평화롭게 떠나가게 할 것이다.
'떠나라!(루가 10,3)"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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