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8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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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용현 | 작성일2011-08-03 | 조회수328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2011년 8월 4일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3-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베드로라는 인물은 우리에게 빼 놓을 수 없는 신앙의 모델입니다. 보통 신앙의 모델이라고 하면 성인을 말하는데 우리는 그 성인의 거룩함을 본받기 위해 그분의 위인전에서 장점과 능력들을 주로 보게 됩니다. 그렇게 놓고 보면 성인들은 처음부터 성인이 될 싹이 보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떡잎이 훌륭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첫 교황이자 신앙인의 모델이 된 베드로는 그런 성인들과는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베드로가 우리의 첫 교황인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지만 주님의 선택이 아니었다면 그는 어떤 면으로 보든 성인의 완벽한 자질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우리 안에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에 대해 한 번에 꿰뚫어보는 지혜를 가졌고 주님을 지켜야 한다는 충성심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의 판단은 그를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게 했지만 둘째 판단은 사탄으로 내 몰리는 당황스런 상황을 맞게 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중적인 잣대와 행동으로 이상하리만큼 일관된 모습을 보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처음 만난 순간에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순간에도 주님을 멀리 떼어 놓으려 합니다. 그는 자신이 죄인이기에 주님과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는 시종일관 주님을 알면 알 수록 그분에게서 멀어지려 합니다. 주님을 정확히 꿰뚫은 것은 베드로의 장점이나 그로 인해 자신이 하느님께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은 치명적 단점이 됩니다. 결국 주님께서 그를 선택하시고 부르시어 그는 주님 곁에 있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주님을 따르지만 정말 주님이 누구신지 모르고 있을 때 베드로는 주님을 정확히 알아보고 증언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정작 하시려는 일을 들었을 때는 누구보다 먼저 주님의 죽음을 막아서려 합니다. 그렇게 그는 주님을 섬겼지만 주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는 주님의 마지막 길을 지키겠다 했으나 그분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이야기하리라는 예언을 듣습니다. 결국 그는 정말 주님이 끌려가시는 길에 함께 했지만, 그 길에서 주님을 모른다 세 번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어지러운 모습에 쓰러집니다. 베드로는 말은 잘하고 행동은 안되는 사람으로도 보이고, 스스로를 너무 잘 알지만 그래서 주님에게서 도망치는 이로도 보입니다. 우리가 베드로를 교황으로 알고는 있지만 정작 가장 빨리 기억하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세 번의 거짓말인 것 처럼 베드로는 성인이라 말하기에 모든 것을 거룩함으로 감싸지 못하는 성인입니다. 베드로는 그렇게 살아서도 죽어서도 우리에게 하느님 앞에 놓여 있는 우리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증인이되고 있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또 어떻게 선택하시는지를 보여주는 증인이기도 합니다. 이런 베드로를 보면서 우리는 쉽게 잘할 수도, 못할 수도 있다고 우리의 부족함에 위로를 주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잘못이나 단점은 단호히 나무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변명거리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하늘나라의 열쇠를 맡았고, 그가 떠나려던 주님에게 불림을 받아 끝까지 주님의 사랑하던 양들 모두의 책임을 맡았습니다. 주님이 계시지 않은 상황에서도 베드로는 완벽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교황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늘 사람들의 삶과 하느님의 가르침 사이에서 흔들리고 실수하며 중심을 잡고 바른 길을 찾아 살아가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으로 그러나 하느님을 잊지 않는 사람의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느님이 그런 사람을 우리 신앙의 중심으로 세우신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완전하고 거룩한 성인이 하느님의 기준과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하느님은 사람의 근본까지 아시는 분이시고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갖춰진 조건 이면에 감추어진 것 까지 모두 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 앞에서 부족함이 드러난 베드로가 성인이 된다는 것, 그리고 그의 손에서 하늘나라가 열린다는 것은 사람의 부족함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기준이 아니라 그 사람의 바른 지혜와 판단과 삶을 믿어주시고 함께 하시어 이끌어 주신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베드로는 분명 부족한 사람이었고, 그 부족함을 죽음을 넘어 자손들에게까지 드러내는 부끄러움의 주인공이지만, 그렇다고 그가 설명하고 살아서 보여준 그리스도의 모든 것은 단 하나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생애를 통해 예수님의 눈에 비친 사람의 기준이 되어 주었고, 예수님을 모른다 한 사람이면서도 동시에 예수님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써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되어 준 사람입니다. 오늘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님은 모든 본당 사제들의 주보성인이십니다. 이미 많이 알려진대로 늦은 공부에 부족한 지식으로 뒤늦게 사제가 되셨고, 그분의 생애는 우리에게는 성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시골의 주목받지 못하는 본당의 사제로 살아간 일생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지금은 우러러지는 그분의 부족함은 현실에서는 냉정히 걸러져야 마땅한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고 그분의 성덕이란 그분 혼자만 그렇게 사는 것으로 충분한, 아니 그분의 인간적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수단 정도로 외면당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의 한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지금 그분은 모든 본당 사제들의 주보성인이십니다. 그러나 어떤 기준으로 보든 그분보다는 좀 더 낳고 훌륭한 사제들을 만드는 것이 방향으로 작용하는 지금, 본당을 맡고 있고 있는 훌륭한 사제들이 그분을 주보로 모신다는 것은 뭔가 맞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 우리는 비안네 신부님 같은 분을 옛 성인으로 존경하긴 하지만 따를 분으로 모시려 들지는 않겠다는 서글픈 판단조차 듭니다. 그분은 우리가 말하는 완벽한 성인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분의 너무나 치명적인 약점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평생을 외롭게 따돌림 속에서 그저 본당의 모든 이들이 삶의 전부였던 분이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살다보면 가끔 이런 성인들이 있나봅니다. 그런데 그 성인들은 하나같이 주님의 예상 밖의 선택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조롱과 지적이 평생을 따라다니지만 그럼에도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주님의 길을 걸었다는 공통점 또한 있습니다. 만일 지금 현실에서 베드로와 같은 이가 또 있다면, 베드로 그의 손에 하늘나라의 열쇠가 들렸다는 것에 불안함을 느끼는 많은 시선이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 이는 지금 우리의 기준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 조차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선택은 분명해 보입니다. 우리가 사람에 대한 판단 만큼이나 주님의 말씀도 분명해 보인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님이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아신다는 섣부른 짐작이 아니라 베드로를 너무 잘 아시면서도 그를 선택하신 것이 당신의 말씀에서 보입니다. 세상에 성인은 하느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완전하고 거룩하신 하느님, 그분은 우리에게 그 거룩함을 완전함을 말씀하시지만 그것이 우리가 당신과 만남 이전에 준비한 완전함과 거룩함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한 죄인에게 하늘나라의 열쇠가 건네진 사연 속에 우리 모두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면서도 가슴 한 켠에서 주님이 주신 그 하늘나라의 열쇠를 꺼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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