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인간중심]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04 조회수403 추천수0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마태오 16, 15 - 17>
 
 
세상의 논리에 빠진 사람들은 대체로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하늘에 계신 내(예수님) 아버지께서 알려 주셨다니 말이 되지 않는다
자신이 언제 예수님의 아버지를 만난 적이라도 있었던가
자신은 들은 적이 없다라고 주님의 말씀에 '의심'한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도 대하셨다
 
“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
 
그러자 세상의 논리에 집착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자기 지성(이성)을 내세우고 싶은 이들은 다음과 같이 또 반문한다
사탄이라고요, 사탄이라는 말을 거룩하신 주님의 입에 입에 담다니 말이 안 된다
이성의 세상에 사탄이라는게 있기는 하는가, 뭔가 잘못된 일이니 이성으로 피헤쳐 보겠다
 
..........................................................................................................................................................
 
 
인간에게는 이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 개인의 이성 작용으로 잘못된 것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기 보다는
가톨릭 교회의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게 훨씬 더 이성적이다 할 수 있다
한 개인의 이성 보다 전체 교회의 이성이 더 유익하다는 의미이다
 
 
 

하느님 원인 = 일차적 원인 ( 근원적 의미 )

인간 원인 = 이차적 원인 ( 종속적 의미 ) 

하느님의 계획에 인간의 의지를 일으키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다. 인간의 이차적 원인을 일으키시는 하느님의 일차적 원인이 작용하셨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부정하면 피조물도 없기 때문이다. 종속적 의미의 이차적 원인(인간)은 근원적 의미의 일차적 원인(하느님)이 작용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즉, 다음의 말씀과 같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은총은 신앙보다 앞선다

신앙 보다도 은총이 먼저이며, 이 은총도 이미 은총이 작용한 결과이다. <가톨릭교회교리서>

모든 은총은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하느님께서는 은총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은총이 가득한 원인(이차적 원인)은 이 은총도 이미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인 하느님에게서 받은 총애(일차적 원인)의 작용 때문이다. 즉, 종속적 의미의 이차적 원인(인간)은 근원적 의미의 일차적 원인(하느님)이 작용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원류) 펠라지우스주의는 인간이 하느님 은총의 필연적인 도움없이 자신의 자유의지의 자연적 힘으로, 윤리적으로 선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아담의 죄의 영향을 단순히 나쁜 표양 정도로 축소시켰다. <가톨릭교회교리서 406 참조>
 
세미 펠라지우스주의는 펠라지우스의 아류로써 은총을 일부 인정(수용)하였지만 은총의 우위성을 부정한 것이다. 원류인 펠라지우스와 같은 동질의 주장으로써 인간 각 개인에게 존재하는 의지를 은총보다 앞세우고 인간의 의지적인 힘에 따라 은총이 달라진다고 주장하였다.
 
[펠라지우스주의]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 초자연적인 은총의 필요성을 부인하거나 또는 소홀히 하였다. 그 대신 인간은 자기 스스로 자력으로 구원에 도달할 수 있다고 인간을 중시한다. 그에게 영향을 받은 일부 수도자들이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의 협력 없이도 신앙을 감지하고 그 결과 의화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의화된 후, 구원의 상태에 머물기 위해 초자연적인 은총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하였다. <출처 : 가톨릭대사전, 가톨릭교회교리서 참조>
 
성 아우구스티노는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서 인간의 자유는 선 그 자체가 될 수 있으며 인간은 구원을 보증해 주는 선을 실천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은총은 자유를 돕는다. 하느님의 은총이 없다면 인간의 자유는 표류하고 만다. 성 예로니모는 펠라지우스주의자들을 향해 인간 스스로 하느님(신)이라고 여기는 자들이다고 간주하였다. 
 
사람의 영혼에는 하느님과 같은 초월적인 '신적 본성'이 내재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자기 스스로의 힘(특히, 신앙의 힘)에 의해 자기 자신을 수양함(의지적인 노력)으로써 그 결과 '초인간적'인 '신적인 자아'가 되어 하느님의 신성에 흡수된다(신화)고 여기고 있다. 뉴에이지적인 책들과 그런 부류의 강의등에서 우리 주위에 흔히 나타나 있다. 그럼에도 이를 식별해 내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단지 그런 성향의 것들을 선택하여 반복적으로 자기 안에 주입시켜 자기 자신의 자유를 위해 "물이 고이지 못하는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팠기 때문이다고 말할 수 있으며 주님을 바라보고서는 물 위를 걷던 베드로가 세상의 온갖 복잡한 논리적인 파도를 바라보고서는 물 속으로 빠지는 것과 다름이 없다.
 
..........................................................................................................................................................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인간 중심의 상대주의 ( 가짜 인본주의 )
 
 
 
다른 종교(종교적 요소)와 혼합(병행)하여 그리스도의 진리를 가로막게 하는 일(상대주의적 진리관 - 이성 철학 사상)이 벌어진다. 특히, 교리에 대해 거부하는 것이다. 은총 - 교회 - 진리 (말씀은 '인간 언어'에 불과하다며) - 교리의 연관된 상호관계를 혼란시키는 경우이다. 이는 개인적인 이기주의에서 출발하며 '신앙의 신비'에 대하여 의심하는 바탕에 있다. 
 
 
 
 
공의회는 일치운동을 가톨릭의 역동적인 종말론에 통합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무시하지 않았다. 교회 역사에서 자주 볼 수 있듯이 이 역동성은 고대의 전통 유산을 쓸모없는 것으로 보는 급진적인 운동으로 잘못 해석될 수도 있다. 이러한 일들은 어디에서 일어나든지 상대주의신앙 무차별주의, 그리고 부적절한 것으로 끝나버리는 “저속한 일치운동”이라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 가톨릭 일치운동의 원리는 공의회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며, 그 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가톨릭 교리의 뜻을 흐려버리는 거짓 평화주의와 상대주의를 분명하고 명확하게 반대했다. ... 일치운동은 지금까지 교회와 그 역사에서 귀중했던 것은 아무것도 버리지 않았다. 또한 역사에서 인정하고 명백히 보여준 진리를 충실히 따르며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더하지 않았다. /// 교회문헌 해설 :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일치의 재건」에 대한 새로운 해석 발터 카스퍼 (교황청 일치평의회 의장 · 추기경)
 
인간 자유를 본질적으로 진리와 분리시켜 보는 관점은 “그 어느 것도 궁극적인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욕구만을 궁극적인 기준으로 삼으며, 자유라는 가면을 쓰고 서로를 옥죄는 감옥이 되는 상대주의”의 한 표현일 뿐이다. 오늘날 진리에 대한 신뢰의 결핍을 드러내 보여 주는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증후들 가운데 하나이다. ... 진리의 배타적 특성을 부정하고 진리가 서로 모순되기까지 하는 다양한 가르침들 안에서 동등하게 드러난다고 가정하는 데에서 이 신뢰의 결핍을 드러내고 있다. <로마 신앙교리성, 윌리엄 조셉 레바다 추기경>
 
 
 
 
ㅡ 교황청 신앙교리성 문헌, '주님이신 예수님' ㅡ
공식적으로 그리고 가시적으로 교회의 구성원이 아닌 사람들을 위해서도 “은총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구원이 가능하다. 이 은총은 교회와 신비로운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이들을 교회 안에 직접 인도하지는 않지만 이들의 정신적 현세적 상황에 적합한 방법으로 이들을 비추어 준다. 이러한 은총은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것이고 그분의 희생제사의 결과이고 성령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다. 이 은총은 각자가 그들의 자유로운 협력으로 구원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은 “성부의 계획에 따라 성자의 파견과 성령의 파견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교회와 연결되어 있다. 하느님의 구원 은총이 - 언제나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지며 교회와 신비로운 관련성을 갖고 있다.  - 비그리스도인들 개인에게도 오는 방식과 관련하여 제2차바티칸 공의회는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만 아시는 길을 통하여” 구원 은총을 주신다는 선언으로 그것을 한정시켰다. 예수 그리스도의 중개와 교회가 사람들 사이에서 하느님 나라 - 실질적으로는 구세주 그리스도의 보편적 왕국인 -와 맺고 있는 “유일하고 특수한 관계”에 대하여 비록 타 종교들이 종말론적인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교회와 더불어 귀의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교회와 본질적으로 동등하다든가 교회에 보완적인 것으로 여기는 타 종교들이 설정한 구원의 여러 방법과 병행하는 구원의 한 방법으로 교회를 간주하는 것은 분명히 신앙에 위배되는 일이다. 확실히 다양한 종교 전통들은 ... 종교 요소들을 담고 있으나 이것들을 그리스도교의 성사들에 고유한 신적 기원 또는 사효적 구원 효력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더욱이 다른 오류에 의존하고 있는 한 구원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간과할 수는 없다. “모든 종교는 다 나름대로 좋은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끄는 종교적 상대주의가 특징인 신앙 무차별주의를 근본적으로 배제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앎으로써 구원되기를 바라신다. 구원은 진리 안에 있다. 진리의 성령의 활동에 순종하는 사람은 이미 구원의 길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 종교간 대화의 전제 조건인 ‘동등성’이란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동등한 인격적 품위를 말하는 것이지 결코 교리 내용과 관련된 동등성이 아니다. ... 그리스도 곧, 진리 그 자체는 보편적 권위로서 부과된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