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하느님의 섭리는 조화를 이루고 계십니다.
태초에 하느님은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셨고,
사랑하는 인류한테는 당신께 순종하며 머무는 한
고통도 죽임도 당하지 않으리라는 특은을 베푸셨다.
그러나 하와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하느님께
불순종하도록 아담을 유혹했고, 이 원죄에 대한
징벌로 이 세상에 고통과 죽음이 도래했다는 것이다.
신학자에 따르면, 고통과 동물의 세계의 참혹하게
느껴질 정도의 적자생존 양태 등은 전체의 아름다움을
위한 부득이한 희생이며 ‘어둠’도 알고 보면 하느님의
찬란한 예술품 가운데 하나다.
그건 그렇다 하더라도 모두가 하와와 아담의 자손인데
왜 다 같은 정도의 고통을 겪지 않는 것인가?
왜 누구나 같은 유형의 죽음을 맞이하지 않는가?
어찌하여 누구의 삶은 다른 이에 비해 더 괴롭고 힘들게
이어지는가?
죄라고는 하와와 아담의 자손이라는 것밖에 없는 의로운
이가 왜 불의한 이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인가?
신학자들은 이러한 물음에 대해,
현명한 의사요 위대한 교육자이신 하느님께서 고통이라는
쓴 약을 통해 장차 다가올 죄악에서 인간을 보호하시고,
인간의 인내를 시험하시며, 인류를 정화시키기 위한 것이
라고 가르치고 응답한다.
질병․죽음․고독․의심․전염병․홍수․지진 등 몇 천 가지 고통을
허락하신 하느님께서는 정의를 귀중히 여기시는 분이시며,
그분의 손상된 정의는 오로지 고통을 통해서만 속죄될 수
있는 것이기에 하느님이 이런 고통을 허락하신다는 것이다.
“고통이라는 걸림돌”
오늘의 묵상 :
세상에 모든 것은
똑 같은 것 하나도 없습니다.
쌍둥이 일진데 그 모습에서도
조금씩은 구별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렇듯 다 달리 이 세상에서 살다가
누구하나 예외 없이 죽음을 맞게 되는데
죽음을 맞는 순간도 다 다릅니다.
그리고 어느 사람이든지 고통을
다 다르게 겪으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평생 어둠 속에서
먹으며 수많은 걱정과 근심과 불만 속에서 살아
간다.”(코헬5,16)
사람들에게는 각각의 은총을 주셨는데
그 은총의 재능은 주님께서 각자에게 알맞게 주셨습니다.
“나는 내가 자비를 베풀려는 이에게 자비를 베풀고
동정을 베풀려는 이에게 동정을 베푼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에 달려 있습니다.”(로마9,15-16)
세상에 나온 사람들은 모두 죽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죽음도 하느님의 섭리에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순환의 질서로 세상을 조화롭게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섭리는 신비롭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선종 기도를 바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 저에게 선종하는 은혜
를 주시어 죽음을 맞는 순간에도 영원한 천상 행복을
생각하고 주님을 그리워하며 기꺼이 죽음을 받아드리게
하소서. 아멘.”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우리들의 삶도 죽음도 모두가 주님의 뜻이오니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모든 순간을 즐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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