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피서
그 무렵 1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2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3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4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5베드로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 그리고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6이 소리를 들은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였다. 7예수님께서 다가오시어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8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9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명령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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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많은 사람이 일상을 떠나 바다로 산으로 강으로 피서를 떠난다. 그리고 돌아올 때면 꼭 몸에 흔적을 남기고 돌아온다. 그 흔적이 검게 그을린 피부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마음에 새겨 넣은 시원한 계곡물이 될 수도 있다.
이 흔적이 강하면 강할수록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 맞는 일상은 더욱 버겁게 느껴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흔적을 보며 떠올리는 추억은 입가에 웃음과 함께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사제들은 일 년에 한 번 꼭 마음의 피서, 곧 피정(避靜)을 떠난다. 피정은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이 흔적은 바쁜 일상에서 미처 보지 못한 하느님의 숨결이고 참 하느님의 손길이다. 하느님의 손길과 숨결을 마주하면 지난 세월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복음의 제자들처럼 머리를 조아리며 풀썩 주저앉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으신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에게 다가가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셨듯이 내 손을 잡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괴롭고 힘들 때마다 마음의 피서로 초대하신다. 그리고 우리 또한 당신처럼 거룩하게 되기를 희망하시며 이렇게 우리 마음에 흔적을 남기신다. 올해는 육신의 피서만이 아니라 마음의 피서도 함께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해처럼 빛나는 주님의 얼굴이 나의 마음에 흔적을 남길 것이다.
임창현 신부(수원교구 성 필립보 생태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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