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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유로운 삶 - 8.7,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07 조회수341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1.8.7 연중 제19주일

열왕기 상19,9ㄱ.11-13ㄱ 로마9,1-5 마태14,22-33

 

 

 

 

자유로운 삶

 

 

 

주일 새벽 주님 찬미로 하루를 연 여기 수도승들입니다.

“날이면 날마다 주님을 찬양하고, 당신 이름 영원토록 찬양하리다.”

끊임없이 주님을 찬양할 때

주님의 영원성에 참여하여 우리 또한 지금 여기서 영원을 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로와 평화요 기쁨과 자유입니다.

말씀 묵상 중 생각난 이사야서 말씀입니다.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주님의 입김이 그 위로 불어오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진정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습니다.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보다 영혼에 큰 위로는 없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 정주의 불암산 역시 하느님의 영원을 상징합니다.

때로 존재 자체로 위로와 평화를 줍니다.

우리는 언젠가 풀처럼 시들어 사라질지라도

여기서의 하느님 찬미의 미사는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이런 평범한 사실이 또한 우리에겐 위로가 됩니다.

이미 하느님의 영원 안에 살고 있음을 깨달아 알 때

영원한 생명의 자유인입니다.

 

얼마 전 여름 피서용으로 써 붙여 놓고 읽는 ‘자유’라는 시가 있습니다.

푸른 하늘, 흰 구름을 보는 순간

부럽다는 생각이 들면서 즉시 떠오른 글입니다.

 

“푸른 하늘/둥둥/흰 구름, 푸른 세상/둥둥/

  자유인, 푸른 바다/둥둥/떠다니고 싶다.”

 

누구나 희구하는바 자유요 자유로울 때 참 행복입니다.

푸른 하늘, 푸른 세상, 푸른 바다가 상징하는바 하느님이요

하느님 안에 둥둥 떠다닐 때 참 자유에 행복입니다.

 

그 자유의 비결을 알려 드립니다.

 

 

 

 

침묵의 장소와 시간을 사랑하십시오.

 

목마른 자가 물을 찾듯이, 배고픈 자가 밥을 찾듯이 고독과 침묵을 찾으십시오.

자발적인 고독과 침묵은 이제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제 말이 아니라 토마스 머튼의 말입니다.

 

수도승 영성의 보편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요

고독과 침묵 역시 수도승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찾는 모든 이들의 기본 조건이 되었습니다.

날로 사람들이 깊이와 무게를 잃고 천박해 가는 것은

바로 고독과 침묵이 없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수도승들은 한결같이 하느님을 찾아

고독과 침묵의 사막으로 갔습니다.

침묵과 고독은 그대로 기도입니다.

하느님을 만나 영육은 치유되고 참 나를 찾습니다.

 

세상 그 누구, 그 무엇도 우리 영혼의 목마름과 배고픔을 채워줄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틈만 나면

하느님을 만나러 침묵과 고독의 외딴 곳을 찾았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은 군중을 배불리 먹이신 후

서둘러 제자들과 군중들을 보내신 후 산에 오르십니다.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

 

함께와 홀로는 삶의 리듬이자 기도의 리듬입니다.

함께 없는 홀로는 맹목이 될 수 있고 홀로 없는 함께는 공허할 수 있습니다.

고독과 연대는 함께 갑니다.

홀로 주님과의 대면의 만남 중에 깊어지는 삶에 공동체의 연대입니다.

 

하여 공동피정도, 공동기도도 좋지만

자주 예수님처럼 홀로의 피정과 기도 시간도 마련해야합니다.

 

1독서의 엘리야는 고독과 침묵 중에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주님께서 지나시는데 주님은 크고 강한 바람 가운데에 계시지 않았고,

지진 가운데에도, 불 속에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불이 지나간 뒤

조용하고 부드러운 주님의 소리가 들려왔고

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 겉옷 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동굴 어귀로 나와 섭니다.

 

 

침묵 상실만큼 큰 영적 손실도 없습니다.

주변이, 마음이 시끄럽고 혼란하면

주님을 볼 수도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도 주님의 향기를 맡을 수도 없습니다.

엘리야가 고요한 하느님의 산 호렙을 찾아 주님을 만났듯이

우리 역시 하느님의 산 불암산 요셉 수도원 미사에서 주님을 만납니다.

 

 

 

 

 

 

늘 주님을 바라보고 사십시오.

 

이런 주님을 향한 삶 자체가 끊임없는 기도입니다.

지향하는 방향과 목표를 잃어 방황이요 혼란입니다.

방향과 목표는 동시에 희망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의 희망은 무엇입니까?

방향을 묻는 것입니다.

 

희망을, 방향을 잃어 절망 중에 방황하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하느님이 궁극의 희망이요 방향입니다.

궁극의 희망이자 방향이신 하느님을 향해야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베드로가 좋은 본보기입니다.

주님의 명령에 배에서 내려 물위를 걸어 예수님께 가던 베드로는

거센 바람에 한 눈을 파는 순간 두려움의 호수에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베드로의 순발력은 놀랍습니다.

“주님, 저를 살려 주십시오.”

화살기도와 더불어 주님께 구출되자 질책을 받습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애당초 타고난 믿음은 없습니다.

베드로의 약한 믿음은 그대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런 시행착오를 통해 늘 주님만을 바라보는 믿음도 깊어집니다.

 

유혹에 빠져 주님 향한 눈길을 놓치는 순간,

우리는 졸지에 탐욕의 바다, 무지의 바다, 질투의 바다, 분노의 바다,

불안과 두려움의 바다에 빠져듭니다.

 

주님을 향할 때는 고요한 호수 같던 마음이

주님을 벗어날 때는 마음의 파도 거센 호수가 됩니다.

 

“해야 달아 주님을 찬미하라.”

아침 시편 찬미 중 떠 오른 구절에서

저는 요즘 수도원 경내의 해바라기 꽃과 달맞이꽃을 묵상했습니다.

늘 해를 바라보는 꽃이라 하여 해바라기요

늘 달을 맞이하는 꽃이라 하여 달맞이꽃입니다.

 

낮에는 해바라기꽃 밤에는 달맞이꽃처럼,

낮에는 주(主)바라기, 밤에는 주(主)맞이꽃 청초한 영혼으로

주님을 찬미하며 살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자나 깨나 늘 주님을 향해 사는 삶 자체보다 더 좋은 기도도 없습니다.

 

 

 

 

제자리에 충실하십시오.

 

구원의 지름길입니다.

늘 주님을 바라보며 살 때 주님 안의 제자리입니다.

주님을 향한 시선을 놓쳐버리면 제자리도 상실입니다.

 

주님의 빛 안에서 환히 들어나는

오늘 지금 여기 내 몸담고 있는 공동체의 제자리입니다.

베드로와 일행이 주님을 만난 곳도

거센 바람에 휘둘리던 배안의 제자리였습니다.

 

바로 복음의 마지막 구절이 이를 잘 보여 줍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그러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말하였다.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주님이 함께 하는 제자리입니다.

공동체의 제자리 중심에 자리 잡고 계시는 주님을 향할 때 안정과 평화입니다.

비로소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살 수 있습니다.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고백하며

주님을 중심한 제자리를 확인하는 제자들입니다.

우리 수도승들의 끊임없는 공동전례 역시

주님을 고백하며 우리의 제자리를 확인, 강화하는 시간입니다.

 

제자리를 잊어, 제자리에 뿌리내리지 못해

불안과 두려움이요 복잡하고 혼란한 삶입니다.

제자리 공동체 생활에 충실할 때 이웃에 대한 연민과 공감도 깊어집니다.

 

바오로의 고백이 이를 입증합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커다란 슬픔과 끊임없는 아픔이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바오로의 이런 진정성 가득 담긴 연민과 공감의 마음은

바로 제자리의 중심인 주님과 깊이 일치된 경지를 보여줍니다.

 

 

 

 

 

자유롭고 싶습니까?

 

침묵과 고독을 사랑하십시오.

삶의 깊이에서 주님을 만나고 이런 주님을 만날 때 자유입니다.

 

 

 

늘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해바라기처럼 늘 주바라기되어 살 때 자유입니다.

유혹에 빠져 주님을 놓지는 순간 불안과 두려움의 바다에 빠져듭니다.

 

 

 

제자리에 충실하십시오.

 

구원과 자유의 지름길입니다.

주님을 만나야 할 곳은 오늘 지금 여기 내 몸담고 있는 제자리의 공동체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에게

온갖 필요한 은총을 내려주시며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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